몇달간 '조국사태'로 불리는
수용적정선 넘은 엄청난 양의 정보
'정치라는 거대담론'속 피로증상
다행히 예술이 자기몫 다해
우리는 분별력 갖고 버티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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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정보피로증후군'(IFS : Information Fatigue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1996년 영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루이스가 만든 개념으로 '정보의 과다에서 오는 심리 질환'을 뜻한다. 당시 직업상 많은 양의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 증상으로, 예컨대 분석적 능력이 저하되고 주의가 산만해지며, 전반적인 불안감과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무기력증 등이 그것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오늘날, 소셜 미디어의 다양한 방식을 통한 확장과 함께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도 전에 정신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더미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정보는 시민민주주의를 성장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나, 그렇다고 정보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알고자 하는 본질로의 접근이 용이해지고 더 나은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피로증후군'을 만나게 되면 분석적 능력이 마비되고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구별이 어려워지는, 다시 말해 '사유의 위축'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은 한 주제의 정보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과의 경제적 갈등이나 외교적 문제로 인한 개인차원의 일본여행 취소 및 상품불매운동도 일어나고,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한 축산농가의 어려움도 발생하며, 다른 한편 상대적으로 개인적 밀도가 높은 문학, 음악, 연극, 전시 등의 행사와 영화 관람, 축제 등의 일상적 예술 활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특별하고 거대한 의도 따위를 앞세우지 않지만 주어진 시간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살갑게 다가오는 이유는 '미세한 것과 거대한 것'의 유기적 관계를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무기력 증상으로 분별과 사유의 어려움을 겪던 중 명성이 자자한 두 편의 영화를 볼 기회가 생겼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와 이옥섭 감독의 '메기'는 소란스럽지 않게 개인과 사회,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그러면서 적정한 정보량을 제공하고 있어서 결코 피로감을 주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벌새'는 199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어른들의 눈에는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일들이 생의 전부처럼 여겨지는 15세 여중생 '은희'의 이야기로 영화는 진행된다. 교육 때문에 낡은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것, 부모님이 격하게 싸운 뒤 아무렇지 않은 듯 거실에서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 김일성 사망 소식에 울부짖는 북한의 주민모습 등은 여중생 '은희'의 입장에서는 그저 낯설고 상관없는 일일 뿐이다. 그렇지만 성수대교 붕괴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감으로 인해 자신의 문제로 다가온다. '메기'는 마리아사랑병원의 간호사 '윤영'과 남자친구 '성원', 병원의 부원장 '경진'을 통해 사소한 의심과 믿을 수 없는 믿음, 청년실업과 손찌검, 도시의 싱크홀, 엑스레이와 지진 등 미세한 일상이 연결코를 만들어 커다란 그물망으로 엮이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영화 모두 여성감독이 만들었고, 올바른 것을 강요하거나 선택하라는 식의 압박 없이 '곰곰이 생각할' 가치가 있는 물음을 주고 있으며, 낱낱이 흩어져 있는 개별적인 사건들이 사회의 거대담론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차곡차곡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몇 달간 우리는 균형 잡힌 일상의 뉴스를 접하기보다는 일명 '조국사태'로 불리는 법무부장관 '조국'과 관련한 엄청난 양의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결과 거짓과 사실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수용적정선을 넘어섬으로써 '정보를 주는' 본래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언론은 '정보를 통한 소통의 과정'을 오히려 왜곡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다량의 정보를 통해 세상 이치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면 좋으련만, 도리어 상식적인 이해가 되지 않는 '정치라는 거대담론' 속에서 피로증상으로 판단이 마비되어 버린 듯하다. 그런 와중에 다행히 영화와 문학, 음악 등 다시 말해 예술이 끈기있게 자기 몫을 해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과잉정보에 익사하지 않으면서 분별력을 갖고 사유를 놓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닐까.

/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