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것인가
국민들 고민·판단이 '가장 이상적'
우리가 반쪽·반의반쪽 갈라질수록
대한민국 살림살이는 그 정도일뿐
사회 발전은 근본적으로 비극에서 잉태한다. "수많은 죽은 자들이 산 사람 하나를 보내(조주 스님)"고 나서야 제대로 돌아가는 것, 엄연하고 야속하지만 그게 세상 이치다. 져야지 이기는 싸움, 끝내 이기려면 먼저 져주어야 하는 싸움이 있다. '가장 아름다이 자기를 버려 시간과 공간을 얻는 꽃들의 길(배한봉)'을 걸어 청사를 일궈낸 고귀한 희생, 노무현의 죽음이 있어 오늘 문재인 정권과 한국 사회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내일도 모레도 가능하게 하려면? 불새는 스스로 몸을 태워 다시 살아난다. 전쟁에서 지더라도 지금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당대 정치인의 적절한 처세술이지만, 전쟁에서 승리를 따내고자 몸을 던져 훗날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걸 포기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의 한편에는 주인공의 희생과 교체만이 있는 건 아니다. 소신과 소명을 위해 자아를 죽이고 짓밟힘을 딛고 일어섰으니, 역사가 사마천과 월나라 왕 구천이 그 중 도드라진다. 입바른 소리를 하여 당시 기준으로 사형보다 더 치욕이며 굴욕이라는 남성을 거세당하는 궁형을 받아들인 건 순전히 하나의 일을 마치기 위해서였다. 인류문명의 위대한 유산 사기는 그런 희생과 아픔을 씨앗으로 태어난 것이다. 와신상담의 주인공 월왕 구천은 어떠한가. 승전국 오나라에 전쟁포로로 끌려가 오왕 부차의 똥을 먹으며 병세를 진단하는 극기 끝에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전쟁에서 이겨 복수해내고 말았으니, 끈질긴 자 승리를 쟁취하리니.
지금이 한 사람 달랑 상여에 실어 올린다고 바뀔 세상이던가. 그렇다고 나라를 위해 '친구들' 원희룡과 나경원에게 '산 자여 따르라'며 동반퇴진론을 꺼내는 건, 허무맹랑하고 현실성이 없다고 할 터이다? 이제 막 권력의 단맛을 보려 하는데 양보하라고? 황당하다고 느끼는 그만큼, 지금 상황은 밥그릇을 두고 벌이는 '높은 분들'의 소모적이고 볼썽사나운 내로남불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제 막 극상의 꼭대기에 접어드는 그들, 지금 판국이라면 10년 이상 독주와 득세를 지속하고 서로 싸우다가 자연사할 것이다. 사실 이건 예외적인 탐욕도 아니다. 인간의 역사가 지금껏 그러했다. 그리하니 386 시절에 일구어낸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성과를 앞으로 얼마나 갉아먹느냐에 따라 686, 786 앞에 차려지는 업보의 밥상은 결정될 터이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수준은 어떡하든 죽이고 죽어 넘어갈 판이다. 상여를 들이 내밀며 어서 오르라는 세상 사람 앞에 들려오는 외침이 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며(랭보), 상처받은 사람이 세상을 단장하니(황지우), 모든 치유자는 상처 입은 사람이다(칼 융). 그 아픔이 사마천이나 구천처럼 역사적 과업을 해내고 영웅을 만들지, 모든 걸 다 잃어버리고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한으로 스러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주체가 되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판단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우리가 반쪽, 반의반 쪽으로 갈라질수록 그만큼만 대한민국이 제대로 돌아가고 그 정도만 대한민국의 살림살이는 꾸려질 텐데.
야학 중학 과정이 끝나는 날, "사실, 나 너하고 같은 초등학교 동창이야"라며 쭈뼛쭈뼛 낯붉히던 친구도, 그 말에 홍시 얼굴이 되었던 나도 낼모레면 환갑이다. 일상생활, 가을걷이, 하루해가 기울고 해는 뜬다. 지금껏 우리는 이리 살아왔다. 80년대 민주화 운동, 금융위기, 월드컵, 촛불, 그리고 서초동 밤거리를 가득 메울 때도 우리네 아랫것들은 삼시 세끼 때우고, 자식 성적에 휘둘리고, 적당히 무단횡단하고, 스마트폰에 정을 주면서….
/조승헌 인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