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청구권 협정' 물자·차관
식민지배 보상아닌 '정치적 합의'
국내 대법 선고는 '국제법 근거'
패소한 일본기업 판결에 따라야
한일 갈등의 핵심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와 관련, 기존 한일 관계를 규정한 '1965년 협정'을 대체하는 새로운 법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인천에서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와 그 후손들이 일본 후지코시,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씩 배상하라"고 확정판결을 내린 이후 유사한 소송이 활발한 상황이다.
특히 인천은 일제강점기 말 부평지역에 한반도 최대 규모 병참기지인 일본육군조병창과 하청공장들이 들어서 강제동원 피해가 컸다.
한국과 일본은 1965년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청구권협정) 등을 통해 일제강점기 관련 법적인 틀을 형성했다.
협정 제1조는 일본이 한국에 3억 달러 규모의 생산물자와 용역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를 차관해주는 내용이다. 제2조는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명시했다.
청구권협정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을 근거로 했다.
당시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불법 강점'이라고 주장했고, 일본은 '합법 지배'라고 맞서 서로의 주장이 엇갈렸다. 따라서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차원이 아니었다.
해방 이후 한일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과 채무관계를 정치적으로 합의할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판단 근거도 이 지점이었다.
당시 대법 전원합의체는 다수의견을 통해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침략전쟁과 직결된 일본기업의 불법 강제동원'에 대한 위자료 청구는 애당초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베 정부는 대법 판결이 국제법을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오히려 대법은 국제법을 근거로 삼았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일 오전 쉐라톤 그랜드 인천 호텔에서 열린 제401회 새얼아침대화 강연자로 나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은 애초 식민지 지배 책임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며 "강제동원 피해 배상은 애초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창록 교수는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주전장'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앞선 대법 판례가 있기 때문에 인천지역 강제동원 피해자들도 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클 전망이지만, 일본기업이 배상에 지지부진할 것으로 보인다.
강제동원 사건은 한국인 개인과 일본기업이 주체인 개별 분쟁이기 때문에 패소한 일본기업들이 판결에 따라 배상하면 일단락될 수 있다는 게 김창록 교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식민지 지배 책임'을 청구권협정을 넘어서는 한일 간 새로운 법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대법원 판결을 통해 식민지 지배 책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핵심 과제라는 점이 선명해졌다"며 "이를 해결하는 새로운 법적 틀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자료를 더 많이 쌓고, 법리를 더 꼼꼼히 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