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개천절이 되면 지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곳이 있다.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이다. 참성단은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오래된 단군 유적이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으로 전해지는 이곳에서는 해마다 개천절이면 '개천대제'(開天大祭)가 열린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의 원종은 직접 참성단에 올라 제사를 올렸고 이후에도 조정에서는 가뭄이나 홍수 등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관리를 파견해 제사를 지냈다. 일제강점기를 제외하고 개천대제의 전통은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종교의식을 따르고는 있지만 현대에 이르러 개천대제는 민족의 문화와 얼을 계승하고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문화행사를 지향하고 있다. 집례자들이 강화군수, 강화군의회의장 등 종교인이 아닌 공직자로 구성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군신화에 보면 단군의 셋째 아들인 부소는 세상에 전염병이 돌자 부싯돌로 불을 만들어 없애 버렸다. 개천대제에서도 하늘의 불을 선녀가 채화하는 엄숙한 의식이 행해진다. 강화지역 여고생 중에서 선발된 7선녀가 제천무(祭天舞)를 추고 참성단 계단을 사뿐히 내려와 향로에 불을 붙이는 모습은 개천대제의 백미다. 이 장면은 해마다 지역신문의 1면을 장식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이처럼 1년 중 개천절에 딱 한번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장소인 참성단이 올해 쓸쓸한 개천절을 맞게 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퍼지는 바람에 개천대제 부활 후 처음으로 행사가 취소된 것이다. 돼지열병의 확산방지가 급선무인 터라 어쩔 수 없었겠지만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 세상에 이로움을 주기 위해 선녀가 불을 붙이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선조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오른 곳이 참성단인데, 후손들은 가축전염병으로 힘들어 하면서도 정작 참성단을 외면한 것 아닌가. 이색이 시를 통해 '이 몸이 몇번이나 이곳을 찾을 수 있을는지'라며 아쉬워했듯이 참성단은 선조들에게 각별한 곳이다.
'강화도, 미래신화의 원형'이란 책의 저자인 이동연 작가는 '강화도는 구슬과 같은 땅'이라고 했다. '자기를 비춰주는 거울이자 세상을 내다보는 보물'로서의 구슬의 의미를 강화도에 접목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거울과 보물의 가치가 집약된 참성단은 '강화도의 구슬'이 아닌가 싶다. 그 구슬이 발산하는 영롱한 빛을 올해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