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부터 16년간 30여 개의 폭발물을 뉴욕 그랜드 센트럴 역, 라디오 시티 뮤직홀 등 공공장소에 설치해 시민을 공포에 떨게 한 '미친 폭탄마' 조지 메테스키를 붙잡은 건 정신과 의사 제임스 브러셀의 도움이 컸다. 브러셀은 폭발 현장의 사진과 범인이 신문사에 보낸 편지들을 종합해 그의 성격 등 범인의 윤곽을 정확히 짚어냈다.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를 병적으로 사랑하는 편집증 환자. 코네티컷 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40대의 뚱뚱한 남자로 독신. 더블 양복을 주로 입고 다니는 가톨릭 신자.'
실제 경찰이 메테스키를 검거했을 때 놀랍게도 그는 더블 양복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프로파일링, 즉 범죄심리 분석의 시작으로 꼽힌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브러셀에게 배운 요원을 중심으로 행동과학부를 설립한 것은 1972년이다. FBI는 미 전역의 교도소에 있는 살인범들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살인자의 심리구조를 방대하게 집대성했다. 그럼에도 사건보고서와 현장사진만을 가지고 범인을 추정하는 프로파일링이 현장에 보급될 때는 일선 형사들로부터 큰 불신을 받았다.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인드 헌터'는 프로파일러의 시작 과정을 세밀하게 다룬 드라마다.
우리의 프로파일링 역사도 짧다. 2000년 경찰에 범죄행동분석팀이 신설되고, 2005년 심리학 ·사회학 전공자를 특채해 전문 교육을 한 후 일선에 배치했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들은 범인이 범죄현장에 남긴 작은 증거와 눈에 보이지 않는 범행 성향을 조사하여 대략적인 범인의 특성과 성격·행동유형·직업·나이 등 '프로파일'을 추론해냈다. 수사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묻지마 범죄'나 현장에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지능범이 활개를 치는 요즈음 프로파일러의 활약은 눈부시다. 화성 사건의 용의자로 이춘재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9명의 프로파일러가 투입됐다. 이들은 이춘재와 대화를 통해 모방범죄로 알려진 8차 사건을 포함해 모든 사건이 자신의 범행이라는 진술을 받아냈다. 이외에도 4건의 살인사건과 30여 건의 성폭행 사건도 추가됐다. 이미 DNA가 나와 자포자기한 심정에서 나온 진술일 수도 있어 그 신빙성은 더 조사해봐야 안다. 그러나 이춘재와 '라포르(친밀관계)'를 형성한 프로파일러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과학수사가 밝혀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