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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시카고마라톤 대회에서 모로코의 할라드 하누치가 2시간5분42초의 세계 최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전 세계 언론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헤드라인으로 경기 결과를 보도했다. '마의 6분 벽 무너지다'. 1988년 로테르담대회에서 에티오피아의 딘사모가 2시간6분50초의 기록으로 7분 벽을 넘어선 이래, 11년 만에 6분 벽이 무너졌으니 충분히 흥분할 일이었다. 그때까지 2시간6분의 벽은 인간의 능력으로 넘을 수 없는 '마의 장벽'이었다.

하지만 당시 스포츠과학 전문가들은 "20년 안에 2시간대의 벽은 무너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산소 섭취와 주법 등을 최적화하는 과학에 기반을 둔 훈련법, 여기에 나날이 발전하는 최첨단 운동 장비 때문에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0.1초를 다투는 경기에서 초경량 신발은 기록 단축에 한 몫하고 있다. 가령 과학자들은 운동화 무게를 1온스(28.35g) 줄이면 1마일(1.6㎞)을 뛸 때 55파운드(24.75㎏)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육상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속도다. 무게를 줄일수록 속도는 빨라진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은 1시간57분대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마의 5분 벽'이 깨진 건 4년 후인 2003년 케냐의 폴 터갓이 2시간4분55초의 기록을 작성하면서다. 그 후 2008년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가 2시간3분59초를, 2014년 케냐의 키프루토 키메토가 2시간2분57초 그리고 2018년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2시간1분39초로 마침내 '1분대'에 들어섰다. 1908년 미국의 존 하예스가 2시간55분18초의 세계기록을 세운 이래, 111년 만에 53분39초가 단축된 셈이다. 1년에 29초씩 빨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2시간의 벽은 여전히 인간의 한계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거대한 벽으로 남아 있었다.

마침내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인류 사상 최초로 42.195㎞ 마라톤 풀코스를 '1시간59분40.2초'에 달렸다. 비록 '인류 마라톤 최초의 2시간 돌파'를 위한 비공식 경기로 공인기록으론 인정되지 않지만, 인간의 숙원이던 2시간 벽은 돌파한 셈이다. "인간에게 불가능한 게 없다는 걸 알려서 기쁘다. 언젠가는 공식 마라톤 대회에서도 2시간 벽을 돌파할 것"이라는 킵초게의 말에서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숙연함과 감동이 전해져 온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