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p20191013133315
롯데그룹 창업자 신격호는 1922년 10월 4일 경남 울주군에서 5남5녀중 맏이로 태어났다. 롯데는 모기업인 롯데제과가 설립되면서 기업의 서막을 열었다. /롯데 제공

잦은 결석 신통치 않은 성적
언양공립보통학교 20회 졸업
큰아버지 '신진걸' 학비대줘
울산농업보습학교 겨우진학
말수 적고 신중 '바둑' 즐겨

2019101401000854000040892





롯데그룹 창업자 신격호(辛格浩)는 1922년 10월 4일 경남 울산에서 20여㎞나 떨어진 산골 마을인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 377에서 농부인 신진수(辛鎭洙)의 5남5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경부고속도로 언양 나들목에서 24번 국도를 따라 울산 방향으로 약 6㎞쯤 가면 울산공업단지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한 대암호 부근에 있다. 

 

그는 8세 때인 1929년 4월 4년제이던 삼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서 1933년에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란 이름으로 제5회 졸업생이 됐다. 

 

1933년 4월에 읍내에 있는 6년제 언양공립보통학교의 5학년에 편입했는데 당시 그의 학업성적은 57명 중 42등이었다.

>> 산골마을 5남5녀 '맏이'

"그는 클라스 메이트들보다 나이가 2~3세 어렸을 뿐 아니라 통학 거리가 물막이고개 너머로 나 있던 당시의 지름길로 다니더라도 왕복 40리가 넘어 어린 나이에 통학만으로도 힘에 부쳤는지 모른다.(등하교 거리 때문에 무리해서 그랬던 것일까. 5학년 한 해 동안 '병'으로 30일간이나 결석했다.) 6학년 때의 성적은 더욱 떨어졌다. 일본어, 산술, 일본사, 지리, 창가 성적은 10점 만점에 각 5점이고 조선어 성적은 4점이었다. 6학년 때도 30일간 결석했다. 이번에는 '병결이 아니라 무단결석'이었다."(정순태, '신격호의 비밀' 1998, 지구촌, 55쪽)

신격호는 공부엔 별로 뜻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1935년 3월 언양공립보통학교의 제20회 졸업생이 된 신격호는 가정형편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 수밖에 없었다. 

 

당시엔 요즘의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농업학교 학생이 한 마을당 1~2명 정도이고 고보(高普) 학생은 1개 면에 1~2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무위도식하던 신격호는 큰아버지 신진걸(辛鎭杰)이 학비를 대주어 1936년 4월 언양에 있던 울산농업보습학교(현재 언양중학교)에 진학했다. 

 

본관이 영산인 신격호의 집안은 400년 동안 이곳에 뿌리를 내렸지만 증조부 때부터 가산이 기울었다. 신격호의 조부는 슬하에 장남 진걸과 차남 진수 형제만 뒀는데 진걸은 이재에 밝았을 뿐 아니라 인물도 걸출했다.

 

경남도청 소재지이던 진주에서 고학으로 신학문을 배운 진걸은 울산군 재무과 측량기사를 거쳐 상남면장을 지냈다. 1919년 퇴직과 함께 부동산 매매업으로 치부해서 논 100마지기를 소유해 둔기마을 제1의 부자가 됐다.

신격호의 부친 진수는 상속받은 재산도 별로 없는데 다 금전에도 담백한 사람이었다. 

 

신격호 집안의 재력에 대해 울산농업보습학교의 학적부에는 '논 15두락, 밭 35두락, 산림 8반보, 기타 250엔 등으로 생활정도는 보통'으로 기록돼 있다. 이 정도 규모이면 중농에 해당하나 10남매를 양육해내기에는 벅찼을 것이다.('신격호의 비밀', 60쪽)


>> 기술직 말단 '양털깎기'


2019101401000854000040893
2년제였던 울산농업보습학교에서도 학업성적은 신통치 못했다. 

 

또래에 비해 덩치는 별로 크지 않았고 말수도 적었으며 행동도 신중했는데 특히 그는 바둑을 즐겼다.('신격호의 비밀', 5천159면) 

 

울산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한 신격호는 18세 되던 해에 당시의 조혼풍습에 따라 한 살 아래인 상남면(현 상동면)의 노순화(盧舜和)와 결혼하면서 경남 양산 통도사 인근의 경남도립종축장 기수보로 취업했다. 

 

기술직 최말단으로 업무는 양털 깎기와 양돈 등인데 박봉이어서 가난을 면치 못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