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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의 공약은 크게 7가지였다. '경제적 자유주의' 'EU 단일시장 강화' '법인세 25%로 인하' '노동 유연성 강화' '공무원 12만명 감축' '재정 건전성 확보' '행정현대화'가 그것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다소 도전적인 공약에도 불구하고 39세의 젊은 지도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세금은 적게 내고 공공서비스는 더 많이 요구하는 프랑스인들의 모순된 정서와 툭하면 길거리 시위와 폭력으로 정책을 뒤집는 프랑스의 현실 앞에서 마크롱의 개혁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공약대로 공공부문 일자리를 없애는 대신 민간 일자리를 늘리고, 법인세를 낮추면서 친기업 정책을 폈지만, '철밥통'으로 불리던 공공노조와 일부 시민단체, 마크롱을 비판하는 언론의 격렬한 반발이 시작됐다. '노란 조끼'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전기·가스 요금 동결, 유류세 인상 백지화와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파리 곳곳이 불타고, 폭력이 난무해 마치 프랑스 혁명을 방불케 했다.

'프랑스 경제개혁가', '유럽통합 선도자'라는 마크롱을 향한 찬사는 제왕적 통치스타일을 뜻하는 '주피터'(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를 지칭) '보나파르트'(나폴레옹)로 바뀌었다. 지지율도 21%로 폭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마크롱의 거품이 마침내 터졌다'는 제목의 칼럼을 싣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마크롱은 포퓰리즘을 남발하지도, 거창한 구호도 내세우지 않았다. 관제데모도 없었다. 대신 마크롱이 직접 국민을 찾아 나섰다. 전국을 돌며 국민과의 대토론을 시작했다. 국민들을 만나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귀를 열었다. 이런 국민과의 '소통'이 장장 3개월간 계속됐다.

그러자 반전(反轉)이 일어났다. '부자들만의 대통령'이란 소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강성노조의 철밥통이 깨지면서 경제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해고도 쉬워졌다. 청년 일자리도 늘었다. 법인세를 내리자 외국으로 떠났던 기업들이 돌아왔다. 지지율도 36%로 치솟았다. '소통'으로 국민과의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스스로 '소통'을 거부하는 문재인 정부가 타산지석 삼아야 할 일이다. '소통'만큼 중요한 게 없다. 문 대통령이 국민의 소리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다면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는 '조국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