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후반 시작과 함께 나상호 대신 황희찬이 들어가 공격적으로 나섰으나 북한의 공세도 만만찮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수많은 스포츠 기사를 접하고, 직접 써보기도 했지만 이처럼 해괴한(?) 기사는 처음 본다. 북한의 공세가 만만찮았으면 만만찮았지, 만만찮았던 것으로 보인다니….
정작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오죽 답답했을까? 현장이 생명인 스포츠 기사를 작성하면서 현장은 커녕, 문자메시지 하나에 상상의 나래를 펴며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야 했으니 분명 죽을 맛이었을 게다.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한국과 북한의 경기가 결국 무중계, 무관중 경기로 막을 내렸다. 동네 조기축구도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가 가능한 시대에 한마디로 '노룩(no-look) 축구'의 새역사(?)를 쓴 셈이다. 단순 비교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노룩 축구에 비하면 호날두의 노쇼(no-show)는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문자중계 과정도 가관이다. 대한축구협회의 문자 중계가 경기 상황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는데, 그 과정이 연기나 봉화로 통신을 했던 조선시대의 봉수제도를 떠올리게 한다.
먼저 평양 현지에 있는 키르기스스탄 국적의 AFC(아시아축구연맹) 감독관이 경고나 교체 등 경기 주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휴대전화 메신저를 이용해 AFC본부에 알려주면 AFC본부가 다시 대한축구협회에 통보했고, 협회는 이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내 팬들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문자중계가 이뤄졌다. 평양에서 피어오른 봉화가 AFC본부가 있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서울에 이르는 동안, 스마트폰이 봉수대 역할을 한 셈이다. 현대문명이 낳은 첨단기기의 쓰임새가 고작 조선시대 봉수대였다는 점은 씁쓸하지만, 스마트폰마저 없었다면 그야말로 한동안 경기 결과도 모를 판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태극전사들이 골을 넣을 때마다 휴전선 넘어 북쪽에서도 함성이 들려왔다고 한다. 그 함성을 들으며 민족애를 느꼈다는 병사들도 적지 않다. 어떻게 17년 전보다도 못한 상황이 돼버렸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이유야 어떻든 이번 노룩 사태로 정부의 외교력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게 됐다. 스마트폰 캘린더에 경기 일정을 입력해놓고, 설마 설마 하며 경기 당일을 손꼽아 기다린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허탈한 하루였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