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그때 그 젊은 나이에/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일본 유학을 위해 부득이 창씨개명을 했던 윤동주는 시 '참회록'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이렇게 고백했다. 당시 누구나 했던 행위가 이 젊은 시인에겐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었던 모양이다. 이것이 윤동주를 민족의 시인으로 추앙하고 있는 이유다.
'자기의 잘못에 대해 깊은 깨달음과 반성'이라는 참회의 본질은 진정성 있는 고백과 뉘우침이다. 제 허물을 고스란히 들춰내 세상에 알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위선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참회엔 고통과 용기가 따른다. 3대 참회록으로 꼽히는 루소, 톨스토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이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회자하는 것도 자신의 타락과 위선에 대해 솔직히 고백했던 그 용기가 빛나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방탕하기 이를 데 없던 그가 기독교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큰 감동을 주었다. 톨스토이는 참회록 '나의 참회'에서 자신의 허물을 뉘우침으로써 후세에게 인생의 좌표가 될 수많은 명언들을 남겼다. 루소도 '고백록'에서 물건을 훔치고 하녀에게 뒤집어씌운 젊은 시절의 타락에 대해 고백했다.
조국 사태로 인한 상처는 크고 깊다. 갈라진 국론도 그렇고 길거리에 버려지는 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말할 것도 없고,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조차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한마디를 한 후 입을 닫았다. 입만 열면 정의와 공정을 외치며 조국을 옹호했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광란에 빠뜨리고도 참회의 글 한 줄 남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수치다. 오죽하면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페이스북에 "조국은 갔다. 후안무치한 인간들뿐이니 뭐가 달라지겠는가. 책임을 통감하는 자가 단 1명도 없다. 이게 우리 수준"이라고 쓴 자성론이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비정상으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 羞惡之心 非人也)'. 누군가는 참회록을 써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