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이 정적들과 싸우면서도 전쟁의 공포에 떨던 영국 국민들을 무난히 이끌었던 것은 탁월한 연설 덕분이었다. 처칠의 지도력은 연설에서 나왔다. 처칠의 연설은 전쟁터에서뿐만 아니라 정치판에서도 강력한 무기로 작용했다. 정치적 공세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처칠은 연설로 불안에 떠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고, 사기가 꺾인 군인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처칠의 연설은 그 자체가 영국의 힘이었다.
처칠은 연설문을 직접 썼다. 한 지도자가 연설문을 직접 쓰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에 감정이 투입되게 마련이다. 듣는 사람의 감동도 배가된다. 만일 처칠이 위대한 연설로 기록되는 1940년 5월 13일 연설문을 남에게 맡겼다면, 오늘날 영국 국민들은 독일어를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연설이 없었다면 독일의 침략을 막아 낼 수 없었으며 영국은 한때나마 독일의 속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게리 올드만의 신들린 연기가 일품인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는 '덩케르크 작전'을 결정하기까지 긴박했던 당시 위기의 상황을 3번의 연설을 통해 극복한 처칠의 진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여러분은 묻습니다. 당신의 정책은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신께서 내려주신 그 모든 힘과 능력을 총동원하여 저 극악무도한 독재자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음험하고 개탄스런 범죄도 능가하는 포악한 전제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처칠의 연설을 듣고 국민은 눈물을 흘렸고, 처칠에게 영국의 미래를 맡겼다. 처칠의 연설은 독일 앞에서 풍전등화 같은 영국을 하나로 단결시켰다.
22일 문재인 대통령 시정 연설의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교육부도 대통령이 연설하기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정시 확대'로 교육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조국사태로 분열된 국론을 수습할 좋은 기회였지만, 경제성과에 대한 자화자찬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조차 비공감(49.6%)이 공감(45.8%)보다 더 컸다. '연설의 달인'이라는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국민을 일깨우고, 상처난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이성적이면서도 감성 어린 언어로 국민이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미래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를 역설했다. 무미건조했던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그래서 못내 아쉽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