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은 국무총리의 역할을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부를 통할한다'고 명시한다. 또 다른 조항엔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적고 있다. '책임총리'의 근거조항이다. 그러나 1948년 건국 이래 배출된 41명의 총리는 막강한 대통령제하에서 그저 내각의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책임총리제'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운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무총리 역할을 강화해 '대독총리', '의전 총리'의 위상을 헌법 정신에 걸맞게 하겠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당선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 '바지 총리'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삼봉 정도전은 '재상을 잘 뽑아서 그와 모든 국정을 논하는 게 바로 군주의 권한'이라며 '군주는 국가적인 대사만 협의할 뿐 다른 정사는 모두 재상에게 맡겨야 한다'는 혁명적인 '재상론'을 펼치다 '왕권'을 들고 나온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했다. '재상의 재상'인 총리는 말 못할 고민도 많다. 총리를 두 번 지낸 JP(김종필)는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상선여수(上善如水·물과 같이 순리에 따라 산다)', '종용유상(從容有常·무슨 일이 있어도 어긋나지 않게 산다)' 등의 고사성어로 허울뿐인 이인자의 심경을 전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오늘로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총리는 2017년 5월 31일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로 임기를 시작해 오늘로 재임 881일째를 맞아 직전 최장수 총리인 김황식 전 총리(880일)의 기록을 넘어섰다. 그 뒤를 고건(816일), 황교안(694일), 이해찬(624일) 전 총리가 잇는다.
대통령제에서는 후반기로 갈수록 언로가 차단되고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민심이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그럴수록 총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교롭게도 이 총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직 총리가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주자 1위 자리를 장기간 지키는 전례가 없다. 그래서일까. 자기 색깔이 없고, 개혁정신이 부족한 이 총리에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할 말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여당 내 대권 주자들이 대부분 낙마한 터라 그 요구는 앞으로도 점점 커질 것이다. 과연 이 총리는 그럴 수 있을까. 역대 최장수 총리의 변신이 주목된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