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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프레스콜에서 출연 배우들이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벽이 오면 나는 나의 세계와 결별하리라, 나는 어른이 된다."

배우 최우혁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함께 다윈 영의 찬란하던 소년기는 비극으로 끝난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비판하며 몸부림쳤던 소년은,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죄를 대속한다. 3대에 걸친 이 가문의 원죄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故박지리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85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한국출판문화상'과 '레드 어워드 시선 부문' 등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다. 계급 갈등, 선과 악, 가족이라는 굴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식을 버무려냈다.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이 독특한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방대한 서사와 심오한 주제를 2시간 반이라는 무대 안에 빠르게 축약해 담았다.

지난해 6일간 9회 공연이라는 짧은 초연 기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재상연 요청에 힘입어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지난 16일부터 27일까지 다시 한 번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올랐다. 원작에 비해 루미 헌터의 비중이나 아버지 세대의 갈등을 묘사하는 이야기는 다소 줄어들었다. 대신 영 가문 3부자에 초점을 맞추며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이희준 작가의 문학적인 가사, 박천휘 작곡가의 웅장한 넘버로 완성도를 높였다.

초연 때와 제작진부터 배우 구성까지 동일하지만, 올해 재연을 거치면서 한층 더 완성도를 높였다. 오경택 연출가는 "초연 때 미진했고 아쉬웠던 부분을 디테일과 밀도감으로 살리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특히 초연의 '사랑해야 한다' 대신 새로 추가된 '밤이 없었다면'은 다윈 영의 변화를 한층 더 묵직하게 그린다. 아버지를 사랑해야 한다고 외치는 대신 다윈 영은 차라리 밤이 없었다면 어땠을 것 같느냐며 관중을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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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프레스콜에서 출연 배우들이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다윈 영의 선택을 두고 단순히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애를 위한 것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쉽다. 극 중 여러번 등장하는 찰스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은 적자생존을 통한 진화를 기반으로 한다. 1구역부터 9구역까지 철저하게 구분된 작품 속 계급사회에서 1구역인 영 가문은 가장 위쪽에 위치한다. 다윈 영은 최고의 명문 학교로 꼽히는 '프라임스쿨'에 다니는 모범생이며, 아버지인 니스 영은 문교부 장관이자 프라임스쿨의 위원장이다. 적자생존 과정에서 살아남아 가장 높은 계급에 오른 가문이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추적하다 보면 계급 문제를 더욱 빼놓을 수가 없다. 폭력적 사회구조에 반기를 들었던 '12월 혁명'과 다윈 영의 할아버지 러너 영은 밀접하게 얽혀 있다. 니스 영과 다윈 영이 죄를 돌리는 대상 역시 계급제 사회의 최하위층인 9구역의 '후디'다. 지나치게 낙후되어 범죄조차 저지를 기운이 없는 9구역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돌린다. 극중 고뇌하는 소년 다윈 영의 목소리에 집중하다보니, 영 가문의 '악의 기원'에 대한 질문은 희미해졌다.

원작과는 다소 달라진 루미 헌터의 상황과 결말 역시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프라임스쿨이 남녀공학으로 바뀌면서 루미 헌터의 인정욕구, 그토록 제이 헌터에게 집착하는 이유 등이 덜 도드라진다. 결말에서 루미 헌터는 원작과 달리 끝까지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며 한 줄기 희망으로 남지만, 축소된 비중만큼이나 루미 헌터의 외침은 뜬금없고 공허하게 들린다.

작은 아쉬움은 남지만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수많은 관객들의 참여와 공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앞서 유희성 서울예술단 이사장은 프레스콜에서 "실험적이지만 마니아를 양산할 수 있는 작품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마따나 이 작품은 복잡하면서도 어두운 주제의식, 다소 낯설 수 있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뮤지컬 팬들의 관심을 모으며 '다윈 영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재연에 이어 삼연, 사연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편지수기자 pyunjs@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