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 정치가 이러니 지방 정치도 만만치 않다. 지난 10월 10일 임시회에서 여주시의회가 내년부터 1만1천여 농가에 매년 60만원의 농민수당을 지급하는 조례안을 부결하면서 홍역을 앓았다. 여주시는 정례회에 부결된 조례안을 수정 없이 직접 재상정할 기세다. 악순환이다.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25주년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5월 11일을 공식 기념일로 제정했다. 사람들은 동학농민혁명을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주로 벌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여기에 참여한 여주 농민군의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여주는 예로부터 농토가 비옥해 질 좋은 쌀을 생산했다. 그만큼 지주와 기득권의 가렴주구가 빈발했다. 3·1운동에 나선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 바로 여주사람 홍병기 선생이다. 그는 여주 농민군을 이끌고 의암 손병희 휘하의 북접 간부로 농민혁명의 격전지 곳곳에서 활약했으며 교주 해월 최시형을 모셨다. 해월 최시형의 묘소가 여주 원적산 천덕봉 기슭에 모셔진 것도 동학과 농민과 여주의 인연을 떠올리게 하는 절묘한 배치인듯하다.
다시 말한다.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는다." 여주를 이끄는 위정자들이 농민들의 분노와 억울함을 정쟁의 도구로 삼으면 공멸한다. 125년 전 동학 농민군들은 부패 척결과 반외세를 외쳤다. 조선이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의 외침을 외면하고 외세에 기대어 결국 나라가 망했다. 지금 여주는 경기도에서 농업인구 종사비율이 가장 높은 도농복합 도시이다. 여주시의회는 농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양동민 지역사회부(여주) 차장 coa007@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