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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당시 대히트송을 탄생시킨 롯데껌의 대표격인 주시후레쉬는 미국의 껌 메이커인 리글리와의 한판승부에서 이겨내며 일본 껌 시장의 최대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롯데제과 제공

천연치클로 고급화 승부수
바브민트·스피아민트 출시
소비자들 인기 '고공 행진'
1959년 2월 '롯데상사' 설립
세계최고 제품에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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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껌 출시로 가능성을 확인한 신격호는 우선 하리스부터 잡기로 했다.

 

하리스는 일본 패전과 함께 만주에서 철수한 일만식품 직원들이 가네보에서 자금을 융통해 1947년에 설립한 껌 메이커였다. 

 

방적 공장은 제조과정에서 껌의 베이스가 되는 수지를 대량으로 토해낸다. 가네보에서 기술까지 지원받고 모리나가(森永)의 유통망을 이용함으로써 하리스는 단기간에 일본 껌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1955년 일본의 추잉껌 연간 생산액은 54억엔인데 하리스가 25억엔으로 1위이고 롯데는 12억엔이었다.

>> 생산 1위 '하리스' 잡기

신격호는 궁리 끝에 "미국 껌 원료는 천연치클이지만 하리스 껌은 합성수지로 만들었다. 

 

하리스에 대항하는 데는 천연치클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합성수지보다 값이 비싼 천연 치클로 고급제품을 만들어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천연치클은 남미의 멕시코나 브라질 등에서만 생산됐는데 일본 정부는 당시수입을 허가하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모 상사가 전기절연체 원료로 천연치클을 수입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숙원인 천연치클을 확보해 이를 원료로 1954년 1월에 10엔짜리 '바브민트'를 출시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20엔짜리 '스피아민트'까지 출시해 소비자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

하리스에 대한 롯데의 우위가 점차 기정사실화하던 1959년 2월에는 자본금 1천만엔의 롯데상사를 설립했다

 

(주)롯데 판매부의 오사카지사, 후쿠오카지사, 나고야출장소, 삿포로연락소 등을 롯데상사의 지점으로 개편해서 통합 관리하는 조직이었다. 

 

1961년에 롯데는 당당히 하리스를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에 등극했다. 기회포착의 명수 신격호의 승리였다.


껌 제조 4년 만에 신격호는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껌 시장이 확대되면서 경쟁 또한 치열해졌다.

 

1956년에는 세계최대의 껌 메이커인 미국 리글리가 일본에 상륙함으로써 롯데는 설립 이후 최대의 시련기를 맞는다. 신격호는 '세계 최고 껌 메이커인 미국의 리글리(Wrigley)도 따라 잡기'로 결심했다.

리글리의 출발은 창업자 윌리엄 리글리 주니어(W. Wrigley. Jr)가 1891년에 껌을 생산하면서부터였다.

 

글리는 부친이 제조한 비누판매를 계기로 사업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마차를 타고 도시를 전전하면서 비누 세일즈에 나섰는데 판매가 부진한 때는 베이킹파우더 같은 광고용 선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이후 베이킹파우더의 수요가 비누보다 더 크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베이킹파우더 판매에만 전념했다. 

 

그는 베이킹파우더를 더 많이 팔기 위해 껌 2통을 덤으로 끼워줬는데 소비자들에 껌이 훨씬 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껌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 1966년, 롯데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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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리글리 껌 상표는 1892년에 나온 로타(Lotta)와 베서(Vassar)였다. 

 

1년 뒤 리글리는 오늘날에도 판매되고 있는 브랜드인 주시프루트(Juicy Fruit)와 스피어민트(Spearmint)를 내놓았다. 

 

그는 신문 광고와 대대적인 플래카드로 자신의 껌을 미국 전역에 알렸다. 

 

또한 수많은 도시를 순회하며 판촉용 껌 선물 공세를 편 결과 1910년 캐나다, 1915년 오스트레일리아, 1927년 영국, 1939년 뉴질랜드 등에 현지공장과 지사를 설치하는 등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서 2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유럽을 석권하는 유명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롯데와 리글리는 일본의 껌 시장 석권을 위해 10여 년 동안 치열한 싸움을 전개했는데 1966년에 롯데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부터 롯데는 일본 껌 시장의 최대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젊은 시절엔 고학생이었으니까 학비나 벌면 좋다고 생각했지요. 그 당시엔 돈 버는 일에 골몰하는 사람을 탐탁잖게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본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입니다."('신격호의 비밀', 175쪽)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