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느닷없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훈령
기자협회는 언론통제 시도 즉각 중단 성명
美 남북전쟁 검열의 유령 시공간 뛰어넘어
'조국전쟁'에 임장한 것이라면 달갑지 않다
언론검열은 주로 북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시행됐다. 첫 단계로 전쟁 초기인 1861년 북군 최고사령관 윈필드 스콧 장군은 군사적 성격을 띤 모든 전신을 금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사실 불법적인 조치였지만 연방의회가 이듬해 1월 대통령에게 공식적인 언론검열 권한을 허용할 때까지 효력이 지속됐다. 다음 단계는 검열 권한이 국무성으로부터 전쟁성으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에드윈 스탠턴 전쟁성장관은 특파원들에게 기사를 송고하기 전 헌병사령관에게 기사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군사적인 문제가 야기될 것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해당되는 부분을 삭제했다. 마지막 국면은 1864년부터 1965년 종전까지의 시기인데 기이하게도 언론 스스로 군 당국의 검열에 자발적으로 협조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군 당국이 신문 발행을 중단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1863년 6월 오하이오 지역을 담당하던 앰브로스 번사이드 장군은 시카고 타임즈에 대해 사흘간의 발행 중지 명령을 내렸다. 신문 발행인이 노예해방선언 이후 군 당국의 잇단 경고를 무시하고 링컨 대통령에 대해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며 비난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번사이드 포고' 사건이다. 이러한 신문 발행 중지 조치는 남군에 우호적인 신문들에 대해 간헐적으로 취해졌다. 언론에 대한 사령관들의 개인적인 불신과 혐오 또한 취재활동에 중대한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 윌리엄 셔먼 장군은 빅스버그에서의 자신의 패배를 보도한 뉴욕 헤럴드의 특파원 토머스 녹스를 남군 스파이로 몰아 처형하려다 실패하자 기어코 진영에서 추방해버렸다.
우리의 근현대사 역시 언론통제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민주화 이후로는 상황이 나아져왔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올해 4월 발표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41위. 북유럽 국가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시아에선 대만과 함께 가장 높은 수준이다. 덕분에 기자회 들루아르 사무총장 일행이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 나라에서 때아닌 언론검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30일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라는 훈령을 느닷없이 발표했다. 총 35개 조항으로 돼 있는데 '검찰청의 장은 오보한 기자에 대해 검찰청 출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조항이 언론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한국기자협회는 언론통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전국언론노조도 언론 길들이기 내지는 언론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반대성명을 냈다. 언론학계도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수정헌법 1조를 연구하는 미국 헌법학자 빈센트 블라시(Vincent Blasi)는 정부의 언론통제는 공권력 남용을 초래하고 봉건주의 사회로의 회귀를 야기한다고 강조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과 같은 조직이 저지르는 사적인 권력 남용보다 더 심각한 악이 정부의 공권력 남용이라고 본다. 언론이야말로 이런 공권력의 남용을 감시하고 점검할 수 있는 사적 영역의 유일무이한 조직이라는 게 세계적 석학의 지론이다. 오히려 더욱더 확장된 보호가 요구되는 언론의 '점검 가치(checking value)'를 누르는 건 아시아의 언론자유 우등국가답지 않다. 국격을 깎아내리는 일이다. 더욱이 150년 전 미국 남북전쟁터를 떠돌던 검열의 유령이 시·공간의 강을 훌쩍 뛰어넘어 21세기 대한민국의 오늘을 불사르고 있는 '조국 전쟁' 현장에 임장한 것이라면 영 달갑지 않다.
/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