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수다를 떨지 않는다. 역사적인 사건은 언제나 조용히 찾아온다. 객관성과 냉철함, 통찰력이 빛났던 앙드레 모루아는 역저 '프랑스사'에서 '프랑스 혁명'부분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은 폭동이 아니라 목가적인 분위기로 시작되었다…7월 14일 온종일 사냥을 하느라 고단하게 잠들었던 국왕은 다음 날 아침 리앙쿠르 공에게 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반란인가?"라는 루이 14세의 물음에 그는 "혁명"이라고 대답했다.' 하긴 1950년 6·25 전쟁도 모두 잠든 일요일 새벽 4시에 발발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남침이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도 조용히 찾아왔다. 동독 공산당 공보비서 귄터 샤보브스키가 주민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여행 자유화 조치를 발표했던 그 날, 한 기자가 여행 자유화가 언제부터냐고 물었고, 그는 우물쭈물하다 "지금, 즉시"라고 말했다. 이 장면이 동독 주민에게 그대로 전파됐다. 사실 확인을 위해 많은 동베를린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들었다. 이에 놀란 국경 수비대는 우왕좌왕하다가 국경 문을 열었다.
내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장벽은 1961년 8월 13일 새벽,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을 오가는 통행로가 브란덴부르크 문을 기점으로 철조망으로 차단되며 만들어졌다. 장벽에서 100m 이내 건물이 모두 철거되고 사람 없는 '죽음의 지대(Death Strip)'가 만들어졌다. 1965년에 여기에 다시 콘크리트 벽이 세워졌고, 1975년에 장벽이 세워졌다. 이토록 견고했던 장벽이 하룻밤에 무너진 것이다.
당시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통일이 손에 잡히는 근거리까지 왔음에도 낙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통일이라는 말을 값싸게 함부로 남발하거나 남용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며 측근의 입을 조심시켰다고 한다. 불면 꺼질까, 만지면 깨질까 봐 마치 무슨 보물단지 다루듯 통일 문제를 취급했다. 들뜨지도 서두르지도 흥분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조용히 통일을 이룩했다. 통일 후에도 게르만 민족이 우수해서 통일이 이뤄졌고, 자신이 통일을 위해 노심초사했다는 자화자찬식의 어휘는 일절 배제했다. 1990년 10월 2일 통일 전야, 콜 총리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연설했다. "독일이 하나가 된 것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결단 덕분이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언제 DMZ 철망을 걷어내고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