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는 유대계 독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가 1906년 학계에 보고하면서 그 존재가 드러났다. 뇌 신경질환으로 입원했지만, 남들과 전혀 다른 증상을 보이다 사망한 여성의 뇌 조직을 관찰하다가 대뇌 피질이 갈색 덩어리의 끈적끈적한 섬유농축제로 덮여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알츠하이머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데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레이건은 1994년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고 고백하면서 "내 생애의 황혼으로 이끌어 갈 여행을 시작한다"고 말해 충격을 주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노벨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 맨부커상 수상자이자 영국의 지성 아이리스 머독도 알츠하이머로 힘든 말년을 보냈다.
'사랑에 대한 영화 중 가장 오래 기억될 걸작'이라는 타임스의 호평을 받은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는 알츠하이머가 불러온 삶의 변화를 다룬 영화다.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던 음악가 출신 80대 노부부 조르주와 안느. 어느 날 안느가 치매 증상이 보이면서 그들의 삶은 하루아침에 달라진다. 조르주는 안느를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갈등에 빠진다. 마침내 고통스러워하는 아내 안느를 베개로 질식사시킨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관객들은 '폭풍 눈물'을 쏟았다.
배우 윤정희가 10년째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그는 2010년 이창동 감독 영화 '시'에서 알츠하이머 초기 증세를 겪는 미자 역을 맡아 청룡영화상은 물론 대종상 여우주연상과 LA 비평가협회상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아마도 이 영화를 촬영할 즈음 알츠하이머가 찾아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1960년대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윤정희는 1976년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와 도피하듯, 파리로 건너가 결혼식을 올려 큰 화제가 됐다.
평생 영화를 찍었던 배우들도 이처럼 '영화 같은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는 영화처럼 모나코 왕비로 살다가 차 사고로 비극적 죽음을 맞았다. 20세기 할리우드 최고의 글래머 스타로 꼽히는 리타 헤이워드는 1980년대 초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고 힘든 투병생활을 보냈다. 윤정희 역시 '여배우와 피아니스트'라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슬프고 안타까울 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