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지·모리나가제과 '아성'
스위스출신 기술자 스카우트
세계수준 새로운 제품 생산
아이스크림·비스킷등 투자
청량음료로 식품다각화 성공

신격호는 롯데 껌이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한 1961년에 초콜릿 제조 사업에도 착수했다.
추잉껌만으로는 기업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내의 초콜릿 소비 증가도 한몫 거들었다.
일본인들은 집에서 손님을 대접할 때 주로 생과자나 '센베이'(일본 전통의 전병)을 내놓는데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초콜릿으로 대체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1961년은 일본 내 소비문화 개화기를 맞아 정치인들이 '소득 배증'을 공약으로 내걸던 시기였다.
>> 1964년 '가나' 첫 출시
당시 일본의 초콜릿 시장은 메이지(明治)제과와 모리나가(森永)제과가 석권하고 있었는데 후발업체인 롯데가 이들의 아성에 도전한 것이다.
초콜릿 산업은 과자 산업 중에서 '중공업 클래스'라 일컬어지는데 제조방법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또한 '초콜릿 시장을 석권하면 제과업계를 제패한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전체 과자류 소비 중에서 초콜릿 비중이 높다. 초콜릿이 '맛의 예술품'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신격호는 후발주자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처음부터 구상을 확실히 했다. 시작부터 국제수준의 신제품을 만들어 메이지와 모리나가를 누르겠다는 전략이다.
1961년 11월 신격호의 밀명을 받은 노나카와 오토모리 두 사람은 산업시찰이란 명분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초콜릿 제조기술자 스카우트 작업에 착수했다.
두 사람은 밤낮으로 기술자와 기계설비를 물색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6개월 이상 노력한 끝인 1962년 7월에 스위스 태생의 초콜릿 기술자 막스 블락 스카우트에 성공했다.
1921년생인 블락은 유럽 초콜릿 업계에서 '무슈 블락'으로 불린 유럽 최고 기술자 중의 한 명이었다.
도쿄만 입구 남단에 위치한 우라가시의 누마가게 지구에 3만3천평의 초콜릿 전문공장에 세계 최고의 생산설비를 갖추고 1964년 1월에 롯데초콜릿 제1호인 '롯데 가나 밀크초콜릿'을 출시했다.
가나는 세계 최고 품질의 카카오 콩을 생산하는 국가이다. 도쿄 민방TV 3국의 비어있던 스팟을 전부 매점해서 1주 단위로 500번의 CM(Commercial Message)을 반복해서 흘려보냈다.
스위스 고유의 악기인 호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배경으로 소비자의 눈과 귀를 자극했다.
>> 종합 과자 메이커 시도

1968년 롯데는 종합 과자 메이커를 시도해서 사이타마현 사야마에 캔디 공장을 건설해서 1969년 9월에 준공했다.
초콜릿처럼 프랑스 캔디의 대명사 '봉봉' 제조명인인 조르주 보당을 스카우트해서 1969년 말부터 '코코롤'과 '초콜릿캔디'를 출시했다. 캔디 종류는 1975년 말까지 100종에 달했다.
1972년 3월에는 아이스크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와 영국, 덴마크에서 기술자들을 초빙해서 아이스크림을 새로 선보이는 한편 1974년에는 비스킷 생산에 도전했다.
1973년 말 제1차 석유파동 여파로 고물가 속의 불경기 즉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국민경제 전체가 가라앉았음에도 투자에 팔을 걷어붙였다. 일본의 연간 비스킷 소비는 1천400억엔으로 이윤은 적었지만 수요가 있는 안정상품인 것이다.
사야마에 35억엔을 투입해서 공장을 건설하고 전문기술자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라이언 헌터를 초빙해 1976년 11월에 시제품을 선보였다.
1968년에 설립된 롯데물산에선 한국에서 인삼을 수입해 시판 중이었는데 1972년에는 대량의 인삼 재고가 고민이었다.
고민 끝에 이를 음료로 만들어 마시기 쉽게 100엔짜리 인삼드링크 캔 '진업'을 선보였더니 단기간에 소진됐다. 이를 계기로 롯데는 청량음료 생산 사업을 본격화해서 식품 다각화에 성공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