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사는 곳 안떠나 '사회적 고립'
삭막한 도시는 이웃 잃었기 때문
멋진 건물보다 공동체 회복 중요
'따로 또 같이 삶' 가능한 공간 필요
독거노인, 나이 드신 부모님을 자식이 부양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과거에 돌봐줄 가족이 없는 소수의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독거노인'이 일부 취약계층을 의미하지 않는다. 혼자 살다 혼자 죽어야 하는 '무연사회'가 우리에게도 이미 다가왔다. 노후준비, 돈만 있으면 아무 문제없을 것으로 착각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노년의 관계빈곤과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홀로 사는 노년의 삶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제 더 이상 자식의 부양을 기대하기 힘들며, 사별, 이혼, 졸혼, 비혼, 직장, 경제적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고령 1인 가구에게는 외로움, 건강악화, 안전, 사회적 소외와 배제 등의 위험이 노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건강한 자립생활이 가능할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어르신들은 70대 중후반을 넘어서며 서서히 어려움에 봉착하기 시작한다. 개인적 질환 또는 노화에 따른 체력의 저하로 조금씩 일상생활의 통제력을 잃어 가기 시작하지만 가끔씩 다녀가는 자녀들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 힘들다. 연로하신 어른들은 당신들의 참여가 타인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 활동의 범위를 제한하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런저런 사회 활동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삶이 통제되지 않으면서 어른들의 심신 또한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다. 사실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누군가 가까이 있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혼자서 모든 살림을 감당하셔야 한다. 어르신들의 집은 익숙할 뿐, 고령의 어르신들이 생활하시기에 불편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불편함을 넘어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어르신들 낙상사고의 절반은 가정에서 발생한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마음 놓고 안전하게 지내시며 일상생활의 조그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주거와 일상생활 지원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이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없다.
고급 실버타운이 있지만 극소수 부유층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노인복지법에 의한 노인복지주택은 부동산개발업자들을 위한 편법적 개발수단으로 왜곡되어 십수년이 넘도록 개선되지 않고 피해자만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최근 들어 의료안심주택, 보린주택, 공공실버주택 등과 같은 의미 있는 공공복지주택 사업이 시행되고 있으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결국 대다수의 어르신들은 이런저런 어려움과 불편이 있어도 마땅한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살고 있는 집을 쉽게 떠날 수 없다. 어르신들은 그렇게 자신에게 남은 유일하고도 소중한 자산인 집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가고 있다. 사람뿐 아니라 집도 시간이 갈수록 여기저기 손보고 고칠 곳이 생기지만 혼자서 어떻게 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르신도 집도 점점 위험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주택의 양적공급에만 머물러 있는 우리의 주택정책도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도시를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의 격리된 공간'으로 채울 것인가? 우리 사는 도시가 삭막한 이유는 집이 부족하고 건물이 낡아서가 아니라 이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도시를 살리기 위해 멋진 건물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그리고 공유지의 회복이다. 공공실버주택의 확대는 물론 '따로 또 같이'의 삶이 가능한 서비스제공형 고령자 임대주택, 어르신들이 이웃과 어울려 교류할 수 있는 공유 주택, 커뮤니티 공간 및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렇게 모두를 위한, 노후를 위한 집과 마을을 만들 때, "이렇게 혼자 오래 살 줄 몰랐어"라는 탄식이 멈추고 내가 살던 집과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사는 행복한 노년이 가능할 것이다.
/김수동 더함플러스 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