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준실명제' 익명 비방 근절 효과 기대
건전한 비판·의사 표현 위축시킬 가능성도
야만적 정치·선정적 보도 문화부터 바꿔야
'차별·혐오 선동 표현' 처벌기준 강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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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
악성댓글 근절책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가수 겸 배우 설리의 사망을 계기로 악성댓글에 대처하기 위한 '악플방지법'(일명 설리법)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악플'은 악성리플의 준말로 근거 없이 게시자나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헐뜯는 내용을 의도적으로 게시하는 답글을 말한다. '악플 방지법'은 악성 댓글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한 노력으로 보이지만 그 타당성은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악플방지법은 댓글 준실명제라고 할 수 있다. 댓글 아이디 전체를 공개하고, IP를 드러내 온라인 댓글 작성자의 책임의식을 높이는 내용이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표시 의무를 부과해 포털별로 다르게 이뤄지던 아이디 공개 정책을 통일하도록 규정하자는 것이다. 정보통신법 개정안 중에는 혐오 표현도 불법정보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혐오표현을 삭제하도록 하는 법률안도 있다. 모두 익명의 배설공간으로 비난받고 있는 인터넷 공간을 정화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댓글 준실명제에 대한 여론은 찬성 쪽이다. 익명성에 숨어 누군가를 비방하고, 모욕하는 행위를 근절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명제로 운영되는 SNS에서도 악플은 기승을 부리고 있듯이 익명성이 악플의 뿌리는 아니다. 무엇보다 댓글 실명제가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이나 모욕행위를 막는 순기능 보다는 건전한 비판이나 일반의사 표현까지 위축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헌법재판소도 인터넷실명제를 위헌으로 판결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의사 표현 자체를 위축하여 자유로운 여론 형성을 방해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악성댓글 문제는 악플방지법과 같은 대증요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 악성댓글을 재생산하는 사회구조를 둘러보면서 대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 정치 문화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악성 댓글의 '플랫폼' 아닐까. 정치는 권력투쟁의 '본능' 때문에 다른 정치세력이나 정치인을 비판하게 마련이지만 한국 정치에서는 합리적 논쟁이 아니라 막말이나 혐오스런 표현으로 정치 활동을 대신한다. 사안마다 진보와 보수, 좌우의 이념대립으로 대체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사회를 증오와 대결의 복마전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야만적 정치문화는 선거철이 되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언론의 책임도 크다. '악플'로 피해가 발생하면 언론들은 남의 일인 것처럼 야단법석이지만, 정작 알권리를 빙자하여 사생활을 수집하고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언론에 보도된 연예인이나 개인의 사생활은 '악플러'들의 먹잇감이 된다. 포털 운영자의 책임을 높여야 한다. 현재 주요 포털사이트들은 악플 대책을 강구하고 있으나 유튜브는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고 있다. 포털은 반복적인 악성댓글 게시자에게 페널티를 주고 고의성이 높을 경우 완전히 추방하는 방식으로 인터넷 게시판 관리 구조를 바꿔 나가야 한다.

혐오표현에 대한 처벌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비판은 생산적 결과를 낳을 수 있지만 비난은 관계를 파괴한다.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혐오 표현이야말로 반사회적 범죄행위 중의 하나이다.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혐오 표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위안부 동원과 같은 일제의 전범행위임을 부정하는 주장처럼 확립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혐오 발언에 대해서는 독일처럼 사회적 범죄로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이야말로 혐오발언과 악플 재생산을 근절하는 대책 아닐까. 이 같은 노력과 함께 학교나 언론은 올바른 인터넷 문화의 정착을 위해 악플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공론의 장을 민주적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가치관을 심어주는 인권 교육과 선플 캠페인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야 한다.

/김창수 인천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