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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세상에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렸다. 경영난으로 이번 12월호, 통권 598호를 끝으로 휴간키로 했던 월간 '샘터'가 그 결정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내년이면 창간 50주년이고 통권 600호 발간을 눈앞에 둔 샘터의 휴간 소식이 많은 이들을 몹시 슬프게 했던 모양이다. 전국에서 성원이 답지했다.

샘터는 가난했던 시절, 글로서 국민에게 '희망'을 준 잡지였다. 피천득과 오천석, 법정 스님, 소설가 최인호, 이해인 수녀, 동화작가 고 정채봉 등 '샘터'의 간판 필진의 글을 읽으면서 잠시 고단한 삶을 접어뒀던 기억을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있을 것이다. 특히 고 최인호 선생은 1975년부터 35년간 '가족'을 400개월을 연재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법정 스님은 '산방한담'을 120회를 연재하며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글도 빼놓을 수 없다. 월전, 운보, 산정, 남정 등 동양화계 원로들과 장우성, 김기창, 서세옥, 장욱진, 천경자 등 서양화계 거장들 대부분이 샘터에 헌정하듯 표지화를 그렸다. 제호는 당대 최고의 명필 소전 손재형 선생이 썼다.

'샘터'는 작지만 강한 잡지였다. '담배 한 갑의 가격을 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초창기 가격이 100원에 불과했으나 가치는 그 열 배, 아니 백배 이상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한 샘터를 읽으며 독자는 '삶 속의 작은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미국에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샘터'가 있었다. 모든 게 메말랐던 1970년대 샘터는 한국인의 교양을 무한 확장한 마른 땅의 '샘물'같은 존재였다.

'샘터'는 한때 월 50만 부가 팔린 적도 있었지만, 최근엔 2만 부로 부수가 뚝 떨어졌다. '샘터 가족은 하루 한쪽 이상의 책을 읽습니다'는 메시지가 무색하게 정치에는 관심을 가져도 책을 외면하는 세상 때문이다. 이에 따른 매년 3억 원의 적자는 큰 짐이 됐다. 그렇다고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에서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샘터'의 휴간은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언론을 통해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에서 샘터의 추억을 가슴에 담고 있었던 과거의 독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덕분에 샘터에 다시 물이 솟기 시작했다. 분노가 일상이 돼버린 시대, 샘터의 회생 소식에서 우리는 한 줄기 희망을 본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