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유지 위한 감가상각 비용 늘어
사람이 하는 서비스업 비중 큰 탓도
한국 성장률 '점점 낮아지는 추세'
제도·문화등 '사회 합리성' 높여야
![경제전망대-허동훈10](https://wimg.kyeongin.com/news/legacy/file/201911/2019111301000881600041831.jpg)
경제가 성숙할수록 성장률이 낮아지는 이유는 자본(기계 설비 등 자본재)과 노동이라는 생산요소의 증가 속도와 효과에 한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본 축적이 미진한 상태에서 자본 축적이 이루어지면 큰 효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그 효과는 점점 둔화한다. 예를 들어 볼펜과 공책만으로 업무를 보다 PC를 쓰면 효율이 크게 올라간다. 노트북을 추가로 이용하면 생산성이 더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PC를 한 대 더 산다고 해서 생산성이 크게 올라가지는 않는다. 감가상각도 중요하다. 축적된 자본이 많을수록 현상 유지를 위해 감가상각에 투자해야 하는 비용도 늘어난다.
노동도 비슷하다. 경제성장 초기에는 잠재적 유휴인력이 많다. 우선 농민들은 고생하긴 하지만 계절과 날씨 등의 이유로 매일 꾸준히 일할 수 없다. 농민이 도시로 이주해 공장이나 가게에서 일하면 매일 일할 수 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 증가 속도도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 빠르다. 평균적인 국민 교육 수준이 초등학교 졸업에서 고졸이 되면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한다. 하지만 도시화율도,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도 증가 속도에 한계가 오기 마련이며 모든 국민이 박사과정에 진학한다면 장점보다 부작용이 더 클 것이다. 즉 경제성장 초기에는 자본과 노동의 양적 확대가 큰 효과를 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대속도가 늦어지고 약발도 약해진다.
선진국이 되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또 다른 이유는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서비스산업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R&D 등 일부 영역을 제외하면 사람이 직접 하는 일이므로 생산성 향상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이발사, 요리사, 교사, 변호사가 하는 일은 크게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다. 반도체를 설계하고 만드는 일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생산성 향상속도가 더딘 부문 즉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커지면 전체 국민경제의 생산성도 둔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나쁜 것은 아니며 오히려 발전의 징표다. 경제의 한 부분에서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하면 다른 부문도 동반해서 커지기 때문이다. 즉 반도체 공장에 다니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 이발소와 식당을 자주 찾고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도 많이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추세적으로 점점 낮아지고 있다. 경제성장률의 점진적인 하락은 불가피하지만, 하락 속도가 빠르고 절대적인 수준이 너무 낮다면 곤란하다. 미국의 1인당 GDP가 우리의 두 배인데 우리 경제성장률이 미국보다 낮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본과 노동의 확대에 한계가 있는 상태에서 해야 할 일은 우리 사회의 합리성을 높이는 것이다. 기업은 자본과 노동을 결합해서 생산한다. 그 생산 방식을 넓은 의미의 기술이라고 부른다. 국민경제의 입장에서 그 기술은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제도, 문화, 관행, 기술을 포괄하는 합리성이다. 어느 정도 부패해도, 관료적 규제가 많아도, 노사관계가 삐걱대도, 기업 오너가 전횡을 해도, 열심히 일하고 투자하면 저절로 경제가 성장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허동훈 인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