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정치인 겨냥 '정적 제거' 남용 우려
현행제도 손질 최소한의 장치 마련 시급
이제라도 본래 취지 살릴 방법 고민해야
최근 정치권의 '국민소환제' 논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국민소환제 촉구 청원에서 비롯됐다. "국민소환법이 20대 국회를 통해 완성되길 바란다"는 청와대 측 입장과 함께 정치권에서도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앞서 지난 대선에선 여야 5당 후보가 모두 국민소환제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은 아직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은 지역 주민사회에서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특정한 목적을 숨긴 채 주민소환제도를 악용할 경우,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 보호장치가 없어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고양시에서 벌어진 '이윤승 경기도 고양시의회 의장' 주민소환 과정 역시 주민소환제의 악용 사례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고양시의회 의장 주민소환모임'은 이윤승 의장 주민소환 투표 청구에 필요한 법적 서명 요청자 수(9천743명)를 초과달성한 총 1만1천475명의 서명부를 지난 9월 일산서구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이 의장에 대한 주민소환 청구사유로 ▲민의를 묵살한 대의민주주의 원칙 위반 ▲시의회의 견제 및 감시 기능 상실 ▲시의회 질서 유지 책무 방기 등을 들었지만, 일부 지역민의 주도하에 불거진 '3기 신도시 발표'에 대한 불만 표출을 이번 주민소환의 본질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하다.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지역 시의원을 대표하는 '시의회 의장 소환'이라는 촌극으로 야기된 것이다.
이윤승 의장에 대한 주민소환은 결국 무산됐다. 선관위에 따르면, 제출된 서명인원 중 2천701명이 무효이며 8천774명만 유효로 1천348명이 보정대상이다. 주민소환모임은 지난 11월 15일까지 최소 969명의 서명에 대한 보정을 완료해 선관위에 제출해야 했으나 보정을 마치지 못해 주민소환은 기각됐다. 특히 선관위의 열람절차 진행 과정에서 주엽동 주민 266명이 이의신청을 해 서명인원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의신청자 대다수는 "3기 신도시 반대를 위한 서명운동인 줄 알았다. 이윤승 의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줄 알았더라면 절대 서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2007년 7월 주민소환제가 시행된 이래, 주민소환 투표가 진행된 지자체의 소환사유는 '지역 이익사업'과의 연계로 집중된다. 원자력발전소 건립, 보금자리지구 지정, 해군기지 건설, 화장장 건립추진 등 정부차원의 지역개발과 특정시설건설 등 주요 정책적 결정 때마다 지역 정치인들은 소환 위기에 놓여졌다. 해당 법안은 시행령은 법 제정 목적과 주민소환투표 청구 서명인 수 등의 요건만 갖추고 있을 뿐, 주민소환을 청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위나 사유는 아예 명시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국회의원은 주민소환 대상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금배지'의 또 다른 특권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지난 12년간 사례를 봤을 때 현행 제도의 허점에 대한 손질없이 국회의원 소환제가 현실화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당장에 정부의 부동산 정책, 교육 정책 등 여론에 예민한 법안은 특정 지역민심에 휘둘려 발의조차 하기 어려워지고, 지역개발과 특정시설 건설 등에서도 범국민적 사업성이 아닌 지역 금배지를 사수하기 위한 선택이 선행될 것이 자명하다. 상대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는 여당 정치인들에게는 족쇄에 다름 아닐 공산이 크다. 야당 의원들이야 정부의 장기적 전망보다 지역 민심을 무기삼아 무조건적 반대 목소리를 내면 그만이다. 정치적으로는 앞서 이윤승 의장의 예처럼 주요 지역 정치인을 겨냥한 '정적 제거'에 남용될 우려와 함께 지역 이기주의는 더욱 활개를 칠 수밖에 없다.
현행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서부터 소환사유 명확화 등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 정치적 남발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 또한 많다.
이제라도 주민소환제의 본래 취지를 살릴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서정환 고양 일산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