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에서 태어나 날생선을 입에 댈 기회가 거의 없었다. 처음 회를 입에 넣었을 때 그 뭉클거렸던 식감과 시큼한 초장 맛만 기억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회가 대중화된 건 1987년 광어가 본격적으로 양식에 성공하면서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 저가 횟집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덕분에 내륙인들도 점점 회 맛을 알게 됐고, 광어는 명실상부 '국민 횟감'으로 우뚝 섰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광어가 넙칫과에 속한다고 '접어'로 표기했다. 넓적한 것이 도다리와 생김새가 비슷해 이를 구분하기 위해 눈이 왼쪽에 붙어 있으면 광어, 오른쪽에 붙어 있으면 도다리 '좌광우도'라는 말도 생겨났다. 광어는 쫀득하고 감칠맛 나는 식감과 특유의 향 때문에 흰 살 생선 중 최고로 친다. 맛과 향을 중시하는 일본인에게도 고급 횟감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순 살의 비율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높다. 고단백, 저지방으로 부드럽고 비린내가 없어 미역국과 매운탕감으로 인기가 높다. 특히 저 열량으로 다이어트에도 좋다.
그런 '국민 광어'가 지난해 말부터 노르웨이산 연어와 일본산 방어에 치이기 시작하더니, 최근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고 한다. 제주에서 광어 1㎏ 도매가는 8천441원으로 3년 전 1만6천632원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생산비 원가인 1만원에도 못 미친다. 오죽하면 국내 양식 광어의 60%를 생산하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제주 어류양식수협이 지난달 말부터 중간 크기(400~600g) 광어 200t을 폐기 처리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일본에서 한국산 광어 검역을 강화하면서 수출길도 막혔다. 국내 양식 광어를 70% 넘게 수입하는 일본이 지난 6월 한국산 광어의 검역 비율을 20%에서 40%로 높였다.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 수입금지 관련 WTO 분쟁에서 패한 이후 내려진 조치다. 누가 봐도 보복무역 냄새가 짙다.
요즘 대형 할인점 수산물 코너에 가보면 광어는 보이지 않고 횟감부터 초밥까지 온통 붉은 살 생선 연어가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유통 업체들은 '40% 할인' '10년 전 가격'을 내세워 대대적인 광어 판촉 행사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광어가 울고 있다. 광어 양식 어가를 위해서, 또 옛날 '광어 한 마리 만 원'의 추억을 생각하며 오늘 저녁 광어회에 소주 한잔 어떨까.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