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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는 지난 1968년 나가다 마사이치가 운영하던 일본 프로야구단 다이마이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마린스)를 인수하는 등 대재벌로의 도약을 노렸다. /연합뉴스

기시 노부스케 前수상 매개
프로야구단 오리온스 인수
現 총리대신 아베의 외조부
1960년대 초 첫 만남 추정
국교정상화 이후 위상 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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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는 나가다 마사이치(永田雅一)가 운영하던 일본 프로야구단 다이마이(大每)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마린스)를 인수했다.

 

모기업인 다이에이가 경영위기 상태였는데 1957~1960년 일본 수상을 역임한 일본 정계 우파 본류의 거물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의 매개로 신격호의 소유로 넘어온 것이다. 

 

기시는 1920년에 도쿄제국대학 법학과 졸업과 동시에 일본 농상무성의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후 1939년 3월에는 만주국 총무청 차장으로 승진해서 만주국 '산업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했다.

>> 일본 정계 거물과 인연

1941년에 귀국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에는 도조 히데키(1884~1948) 내각의 상공대신에 취임했다. 

 

1945년 일본 패전 후에는 연합군 측에 의해 A급 전범이 되었으나 기소되지 않고 석방된 후 정계에 진출해서 총리대신이 됐다.

기시의 형인 사토 이치로는 일본해군 중장 출신이고 1974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토 에이사쿠(1901~1975)는 기시의 친동생이었다. 

 

기시의 본래 성씨는 사토였다. 도쿄제국대학 출신의 에이사쿠는 형인 기시의 도움으로 일본 정계에 입문해서 1964년부터 1972년 9월까지 7년 8개월간 재임한 일본 최장수 총리이기도 하다. 

 

또한 기시는 일본 최장수 외무장관을 역임한 아베신타로(1924~1991)의 장인으로 일본의 현 총리대신 아베 신조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 한일 국교 정상화 적극 찬성


혈혈단신의 식민지 백성인 신격호가 자신보다 무려 26세나 많은 기시 노부스케와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는 미스터리이다. 

 

1990년대 말에 신격호는 "나와 기시 선생과는 30년 동안이나 알고 지냈다"고 고백한 터여서 기시와 신격호와의 첫 만남 시기는 대략 1960년대 초반쯤으로 추정된다.('신격호의 비밀', 175쪽) 

 

고립무원의 이방인인 신격호가 일본 최고의 권력자 기시 노부스케와 인연이 닿았다는 것은 롯데의 승승장구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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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는 한국인으로는 유창순 전 국무총리,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박용학 전 무역협회장, 이승윤 전 부총리 등과 친분을 유지했다. 

 

그는 한일 국교 정상화를 적극 찬성했을 뿐만 아니라 후일 박정희 개발독재의 유력한 지지자이기도 했다. 

 

신격호는 한일회담 대표나 주일 한국 대사가 도쿄에 부임하면 개인 소유의 가루이자와 별장을 사용하도록 했다. 

 

1965년 12월 18일 오전 10시 반한국의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두 나라의 국교정상화를 최종 매듭짓는 기본조약 및 협정에 의한 비준서가 교환됐다.

 

당시 일본의 총리대신은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인 사토 에이사쿠로 그는 박정희와 '한일협정'을 체결하고 국교를 수립했다.

 

한일회담 성사에 막후에서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신격호의 일본과 한국에서의 향후 위상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