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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를 외치며 본격화된 홍콩 민주화 시위가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18일 새벽 홍콩 이공대는 시위대와 진압경찰의 무력 충돌로 화염에 휩싸였다. 홍콩 행정부는 시위대의 최후 보루인 이공대 진압에 성공했지만, 이미 다수의 희생을 딛고 확산된 홍콩 시민들의 시위 동력은 쉽게 꺾일 기세가 아니다.

홍콩 민주화 시위는 우리의 민주화 운동과 묘한 접점을 이루면서 심리적 감정선을 자극한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시대를 거쳐 민주화를 성취한 것이 불과 30여년 전 일이다. 실제로 홍콩 시위대는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한국의 1987년 6월 항쟁을 모델로 삼고 있다고 밝힌다. '임을 위한 행진곡' 등 한국의 80년대 민중가요를 번안해 부르며, 행정장관 직선제를 실현해 중국 정부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홍콩 시민들은 한국과 한국인의 연대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을 지지하는 역사적 동질감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연대는 만만치 않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국 대학생과 중국 유학생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다. 중국 유학생들은 우리 학생들이 게시한 홍콩 지지 대자보와 현수막을 커터 칼로 훼손하는 것은 물론 몸싸움도 불사한다. 이들은 심지어 '독도는 일본 땅' '김정은 만세'와 같이 보복성 게시물로 한국을 조롱하고 있다니, 중국의 오만은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민주화 주역을 자부하는 한국 정부와 여당은 아예 홍콩 민주화 시위에 묵언수행 중이다. 사드 사태로 중국에 무릎을 꿇었던 기억 때문인지, 중국 비위를 거스를 엄두를 못내는 모양새다. 홍콩 시위대는 현 정부와 여당의 민주화 역정을 흠모한다는데, 아무래도 짝사랑에 그칠 듯 싶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도 한국 정부를 다시 볼 일이 생겼다. 최근 한국 정부는 탈북주민 2명을 엽기적인 살인범죄자로 단정해 눈가린채 판문점에 끌고가 북한으로 강제 추방했다. 통일부는 아예 남북간 형사사법공조 방안을 마련해 탈북주민 중 범죄자의 북한 송환 길을 열겠다는 입장이다. 반중 민주화 홍콩 시민들을 중국이 범죄자로 몰아 본토로 송환할 가능성을 막기위해 민주화 시위를 시작한 홍콩시민들이다. 눈을 비비고 한국을 다시 볼 만 하지 않겠는가.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