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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호텔 창문' 표지

"네가 누구 덕에 산 줄 알아야 한다."

2019년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편혜영의 '호텔 창문'은 사촌 형의 죽음 이후 죄의식을 갖고 살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릴 적 형들과 냇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진 운오는 바위를 딛고 올라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형의 머리를 밟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년 뒤, 형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 운오는 식당에서 우연히 형의 친구를 만난다. 운오는 그로부터 과거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불씨가 자연발화인지, 그가 버린 담배꽁초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한편, 운오는 어릴 적 자주 놀던 길에 위치한 호텔에서 불이 나는 광경을 목격한다.

심사위원단은 소설에 대해 "죄 없는 죄의식에 대한 치밀한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작품 속 살아생전 나쁜 짓을 하고도 죽음으로서 의인이 된 형과, 죄를 짓지 않고도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운오의 삶은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네가 누구 덕에 산 줄 알아야 한다"는 큰어머니의 문자는 운오의 죄의식을 더욱 견고하게 매듭짓는다.

또한 중심축을 이루는 '화재' 사건은 각각 다른 인물이 가진 내면의 짐을 대신 보여준다. 형 친구의 입으로 전해진 공장의 화재와, 운오가 직접 마주한 호텔의 화재.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이 목격한 것에 확신할 수 없는 상태로 죄의식을 먼저 부여받는다. 옆으로 넓게 퍼지는 불길은 마치 죄의식이 한 사람의 인생을 집어삼키는 모습처럼 무자비하다.

"처음에는 그걸 알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한 스스로에게 환멸이 느껴졌다."

실체를 알게 된 순간, 인물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살아남은 인간으로 지켜야 할 도리'와 같은 것은 타인 혹은 스스로에게서 타오른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죄라는 굴레에 종속돼 서로를 옭아매고, 누군가는 죄가 없음에도 죄를 가진 마음으로 살아간다. 작가는 이러한 지점을 날카롭게 포착해 한 편의 소설로 담아냈다.

한편 책에는 6명의 여성 작가들로 구성된 후보작도 함께 수록됐다. 평평했던 삶이 축축한 빨래처럼 비틀어질 수 있는 사랑의 형태를 이야기한 김금희의 '기괴의 탄생', 현실과 비현실의 극점에서 서로를 끌어당기는 관계를 담은 김사과의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퀴어 커플이 마주한 일상의 현실적인 균열점을 포착한 김혜진의 '자정 무렵'.

이외에도 하얗고 넓고 밝은 곳만 선물하고 싶은 진심을 노래한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 10대 학생들의 몰카와 그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이야기를 조명한 조남주의 '여자아이는 자라서', 아이를 통해 맺을 수 있는 관계의 한계를 그린 최은미의 '보내는 이' 등도 함께 담겼다.

/유송희기자 ys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