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001001390300066911

강아지 한 마리가 수도권쓰레기매립지 인근 마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수도권매립지에 쓰레기가 반입되고 5년째 되던 해인 1996년의 일이다. 그해 5월 매립지에서 1.3㎞ 떨어진 한 가정에서 강아지가 태어났는데 한쪽 뒷다리가 없는 기형 강아지였다. 이 강아지는 쓰레기 반입 과정에서 환경피해를 호소하던 주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사실 강아지는 충격의 시작이었다. 기형 강아지가 태어난 것을 계기로 매립지 인근에서 사육하는 가축들의 이상징후 사례들이 속속 보고됐다. 젖소의 유산율이 급증한 가운데 일부 젖소가 기형 송아지를 사산하는가 하면 닭과 칠면조들이 원인 모르게 죽어 나가기도 했다. 주민들은 "매립지가 들어서기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며 매립지를 원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매립지에는 하루 평균 2천400여대의 쓰레기 수송차량이 드나들며 비산먼지 공해를 일으키는데도 인근 지역에 대기오염측정소 하나 설치되지 않은 실정이었다. 주민들을 특히 힘들게 한 것은 이런 일이 언젠가는 사람에게서 발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세발 강아지가 태어난 지 23년이 지난 지금, 한동안 잠잠했던 매립지 인근 마을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매립지 인근에 위치한 사월마을이 주거지역으로 부적합하다는 환경부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는 순환골재업체 등 건설폐기물 업체들이 난립해 있다. 수도권매립지가 조성되면서 들어선 업체들이다. 이 마을에서 운영중인 공장은 165개로 주민수(122명) 보다도 많다고 하니 주민들의 고통을 짐작할 만하다. 무엇보다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암이었다. 이 마을에서는 2005년부터 2018년까지 15명에게서 폐암과 유방암이 발생해 8명이 사망했다. 특히 주민들의 암 집단 발병이 인근 공장에서 나온 발암물질 때문이었다는 전북 익산 잠정마을의 사례는 사월마을 주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다행히 이번 환경부 조사 결과, 사월마을의 경우 암 발병과 주변환경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주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인 듯 싶다.

매립지 환경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 준 세발 강아지는 불편한 몸으로 힘겹게 세상을 살았을 것이다. 지금 국내 곳곳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들을 보면 정부, 지자체 할 것 없이 23년 전 강아지가 직접 몸으로 보여준 '경고'를 깡그리 잊어버린 것 같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