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화백이 홍익대 미술대학장이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이라는 안정된 미래를 훌훌 털어버리고 1963년 뉴욕으로 떠날 때, 그의 나이는 50이었다. 뉴욕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동양인이라는 멸시, 가난에 향수병까지 겹치면서 큰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정서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며 새로운 미학 양식을 창조하는 밑거름이 됐다.
외로움이 절정을 맞던 1966년 그는 서울의 시인 김광섭에게 편지를 보낸다. "요새 제 그림은 청록색, 점밖에 없어요. 왼편에서 한 줄기 점의 파동이 가고, 또 그 아래, 또 그 아래, 그래서 온통 점만 존재하는 그림이야요. 붓을 들면 언제나 서러운 생각이 쏟아져 오는데, 왜 나는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참 모르겠어요. 창밖에 빗소리가 커집니다." 김환기는 이 숱한 점을 찍으며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 조국이라는 게 고향이라는 게…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이라고 되뇌었다.
김환기는 우리 근현대사에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화가다. 구상과 추상, 반추상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조선백자와 같은 문화유산과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고, 특히 뉴욕생활에서는 서예 붓으로 수묵화를 그리는 듯이 화폭 전체에 점을 찍는 전면점화를 선보였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서 영감을 얻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그리운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하나하나 점을 찍어 내려간 대표작이다. 이와 함께 1971년 별을 상징하는 푸른 점들로 캔버스를 가득 채운 '우주'(Universe 5-IV-71 #200) 역시 말년 뉴욕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김환기는 '우주'를 1971년 뉴욕 포인덱스터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 포스터에 사용할 만큼 애착을 가졌다.
이 '우주'가 지난 23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153억4천930만원(구매자 수수료 포함)에 낙찰됐다. 이는 작가의 세계 최고 기록이자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이다. '우주'는 작가가 남긴 유일한 두 폭 그림이면서 작가의 모든 작품 중 가장 폭넓은 푸른 색조를 사용한, 가장 큰 그림이다. 푸른 빛은 '환기 블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김환기가 너무도 사랑했던, 김환기를 대표하는 색이다. 이제 화가는 떠나고 없지만, 거대한 크기의 면에 선을 그리고 푸른 점을 찍었던 그의 혼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