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교수의 '3김 낚시론' 떠오르는 요즘
민주 '586'·한국당 '3선' 퇴진론 '내홍' 때문
모두 고민하는척 하지만 진정성 보이지않아
정부에서도 호기롭게 떠나려는 사람 안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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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논설실장
1985년 4월로 기억된다. 연세대 김동길 교수가 한 일간지에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씨에게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가 낚시나 해라"며 퇴진을 주장하는 '3김 낚시론'을 기고했다. 세 사람이 싸우다가 '서울의 봄'을 허망하게 날려 보냈고, 앞으로도 후보 단일화를 이루기도 어려울 테니 이제 정치판을 기웃거리지 말고 낚시나 가라는 것이었다. 좋은 낚시터도 알아봐 주겠다고 덧붙였다.

이 글은 뜨거운 찬반논쟁을 불렀다. 서정적 제목과는 달리 내용이 당시 한국 정치를 호령하는 3김에 직격탄을 날렸기에 더욱 그랬다. 민주화의 열망이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화를 이루는데 이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때였다. 그런데 "정치의 판도가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는 이때에 이들 세 김씨의 재등장을 바라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 김씨의 시대는 이미 갔습니다"라고 했으니 시끄러운 건 당연했다.

김 교수는 3김 퇴진을 주장하면서 하버드 대학 네이던 퓨지 총장의 예를 들었다. 60년대 미국의 대학은 월남전을 반대하는 시위가 잇따르면서 학내가 큰 혼란에 빠졌다. 하버드대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경찰 투입을 두고 교수들 간의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하지만 퓨지 총장은 일부 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찰을 학내에 불러들여 학내 데모를 진압하고 학교를 정상화시킨 후 임기 2년을 남기고 퇴진을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과 맞서 반대 의견을 내세웠던 법과대학의 젊은 교수를 후임 총장으로 지명했다. 그때 퓨지 총장이 떠나면서 발표한 성명문 제목이 그 유명한 '나의 시대는 끝났다'였다. 김 교수는 3김에게 필요한 건 퓨지 총장 같은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80년의 봄 3김이 분열하지 않고 단일화를 이뤘다면 전두환 군부독재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광주의 아픔도 없었다. 그러나 3김은 '단일화'라는 국민의 뜨거운 염원을 무시한 채 권력욕으로 분열하면서 군부 출현의 빌미를 주었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 뼈아픈 실책으로 기록되고 있다. 김 교수가 3김 퇴진론을 거론한 것도 그 일과 무관하지 않다. 김 교수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다.

김 교수의 칼럼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기수는 이제 40대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들에게 길을 열어 주고 기회를 주기 위해서 동교동파니 상도동파니 하는 따위의 낱말도 더 이상 듣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리고 두 김씨가, 가능하면 세 김씨가 '우리는 간다'는 내용의 성명서나 하나 발표하고 이 나라의 어느 시골로 낙향한다면 얼마나 멋진 정경이 되겠습니까. 산 좋고 물 좋아 은퇴하여 낚시질하기 꼭 알맞은 곳을 소개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 양 김씨여, 세 김 씨여, 아직 빛이 있는 동안에 서울을 떠나세요. 어서 떠나세요. 어둡기 전에, 어서."

이 글로 논란이 커지자 김 교수는 유신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절필을 선언했다. 그러나 김 교수의 글은 그냥 뜬금없이 나온 게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도 3김을 잘 알고 있던 김 교수는 어떤 상황이 와도 이들은 절대 단일화를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3년 후 6·29선언으로 이 땅에 민주화가 찾아온 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3김은 결국 단일화를 하지 못하고 노태우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다. 당시 김 교수의 칼럼을 읽은 3김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1971년 '40대 기수론'을 주창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66세(1993년), 김대중 대통령은 4번 출마해 72세(1997년)에 대권을 잡았다는 것이다.

문득, 김 교수의 '3김 낚시론'이 떠오른 것은 요즘 정치판에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화두로 떠오른 '물갈이론' 때문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586 정치인들의 퇴진으로, 야당인 한국당은 3선 중진 퇴진론으로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이들 모두 고민하는 척하지만, 이는 겉으로만 보이는 것일 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늘 이런 식이다. 어찌 됐건 사상 최악의 20대 국회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어디에도 제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다. 생각 같아서는 모두 물갈이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나의 시대는 끝났다"고 호기롭게 말하는 퓨지 총장 같은 이가 없으니 이제 우리라도 이렇게 말해주자. "너희 시대는 끝났다. 가라! 낚시."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