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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둘러싼 양국 갈등이 봉합되는가 했더니, 일본 정부의 언론플레이로 다시 엉망이 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아무런 양보도 없었다" "퍼펙트 게임"이라며 외교적 승리 운운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에 청와대가 발끈했다. 익명의 고위관계자가 "양심을 갖고 한말이냐"고 아베를 직접 비난하고, 정의용 안보실장은 지소미아 협상의 전말을 공개하며 일본의 언론플레이를 맹렬히 비난했다.

수출규제와 지소미아 파기로 장군 멍군을 부르며 대치했던 상황이고 보면, 문제 해결을 위한 상호존중은 당연하다. 그런데 아베는 대놓고 한국의 백기투항을 강조하니, 외교적 무례를 넘어 도발에 가깝다. 한국을 얼마나 만만하게 보면 이럴까 괘씸하기 짝이 없다.

일본뿐 아니다. 주변 강대국의 한국 무시가 도를 넘고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국빈으로 중국을 방문해 "중국몽이 전 인류의 꿈이 되기 바란다"며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중국을 예찬했다. 하지만 중국은 같은 수준의 한국 예찬론 대신 문 대통령이 '혼밥'을 먹게 했다. 중국은 이제 우리를 대놓고 하대한다. 영원한 동맹인 줄 알았던 트럼프는 한국에서 방위비를 쥐어짜기 위해 발가벗고 달려든다. 미군철수는 이제 공공연한 현안이 됐다.

정말 아픈 건 문 대통령이 그렇게 애정을 쏟았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막가파식 행보다. 김 위원장의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을 요청한 문 대통령의 비밀 친서를 까발리고 불참을 공개 통보했다. "못오신다면 특사라도 방문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청"까지 공개했다. 자신과 '공화국'을 위한 문 대통령의 노심초사를 생각하면 인간적, 정치적으로 이럴 수 없는 일이다.

문 대통령은 야당 복은 있지만, 주변국 지도자 복은 없는 모양이다. 얌체 같은 아베, 거만한 시진핑, 난폭한 트럼프, 청년 독재자 김정은에 둘러싸인 문 대통령의 스트레스가 엄청날 듯하다. 대통령은 '나쁜 평화는 없다'는 신념에 따라 겸손한 인품과 인내로 이들을 대하지만, 이들이 대통령과 한국을 함부로 대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스트레스 또한 상당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덕목으로 올가미를 피하는 여우의 지혜와 늑대를 주눅들게 할 사자의 용기를 강조했다. 주변 4강과 북한까지 우리에게 올가미를 채우고 늑대의 이빨을 드러내는 형세다. 대통령이 여우의 머리와 사자의 심장으로 무장하고 독해져야 할 때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