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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는 1970년대부터 다각화를 시작했다. 1973년 롯데 호텔을 설립했으며 1974년에는 칠성한미음료를 인수해 롯데칠성음료로 개명했다. 사진은 롯데 호텔 설립 당시의 모습. /롯데 제공

막강 자본·질좋은 상품 제공
선진화 마케팅 전략등 주효
1979년 특급 호텔롯데 신축
백화점·패스트푸드업 진출
식품·유통등 복합기업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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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제과는 1970년대 급속히 다각화했다.

 

1970년 10월 껌과 과자 포장에 필요한 은박지 생산을 위해 동방알미늄을 인수해 롯데알미늄으로 개명하고 1973년 11월에는 공해방지 시설업체인 롯데기공과 오디오 생산업체인 롯데파이오니아를 각각 설립했다. 

 

1974년 1월에는 사무기기 메이커인 롯데산업과 11월에는 그룹의 무역창구인 롯데상사를 설립했다. 또한 그해 4월에는 국내 최대의 청량음료 메이커인 칠성사이다를 인수, 롯데칠성음료로 개명했다. 

 

1978년 1월에는 한일향료(현 롯데식품)를 설립했으며 2월에는 삼강하드 아이스크림을 인수해 롯데삼강으로 변경했다.

 

4월에는 롯데햄우유를 설립했다. 후발주자인 롯데제과는 막강한 자본과 질 좋은 상품 제공, 선진화한 마케팅 등으로 단기간에 업계 정상에 올랐다.

>> 롯데제과 '업계 정상'


한편 이 무렵 롯데는 종래와는 전혀 다른 신사업에 진출했다. 

 

1973년부터 시작된 관광진흥정책에 따라 서울을 중심으로 호텔신라 등 국제수준의 매머드 관광호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70년 11월 13일 신격호는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박정희는 신격호에게 서울의 요지인 소공동의 반도호텔을 불하해 줄 테니 국제규모의 호텔을 지어 경영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날벼락 같은 이야기에 해답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석했던 이후락 주일대사가 쿡쿡 찌르면서 '이 자리에서는 예라고 대답만 하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도리 없이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경제발전으로 관광수요가 증가할 것이 예상되는 데다 정권차원에서 밀어주겠다는 데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아사히신문' 1988.6.5)


이날 청와대 면담은 제과업체 롯데가 호텔과 유통재벌로 탈바꿈하는 출발점이었다. 

 

1974년 6월 금싸라기 땅인 반도호텔 매각작업에 롯데만 단독 응찰해 41억9천800만원에 낙찰받았으며 박정권의 지원으로 반도호텔 옆의 국립도서관도 확보했다. 근처의 아서원 소유권도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의 지원을 받아 손쉽게 넘겨받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지상 38층 지하 3층의 객실 1천20실의 특급호텔인 호텔 롯데를 신축, 1979년 10월에 완공했다. 1978년 9월 마산의 크리스탈 관광호텔을 인수, 롯데크리스탈호텔로 명명했다.

1978년에 평화건설을 인수, 롯데건설로 변경했는데 중동건설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그 와중에서 롯데의 유통업 진출도 성사됐다.

"롯데는 당초 신축 중인 롯데호텔 옆에 9층짜리 부속건물을 짓겠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막상 건물이 올라가면서 25층으로 계획이 바뀌었다. 용도도 처음에는 투숙객을 위한 쇼핑공간(1, 2층)이었지만 완공을 앞두고는 '백화점(1~7층)과 임대사무실'로 변했다. 당시는 도심 인구집중 억제정책이 강력히 실시되던 때여서 대규모 백화점은 허가될 수 없었다. 하지만 허락하고 싶어 하는 박정희의 의중을 읽은 서울시 한 공무원이 명칭을 '쇼핑센터'로 바꾸는 꾀를 냈다. 박정희는 궁정동 안가에서 숨지기 몇 시간 전인 1979년 10월 26일 오후 '롯데쇼핑센터'를 재가했다."('마천루' 롯데의 성장동력은 권력이었다, '한겨레신문', 토요판, 2016.6.25)

>> 새로운 사업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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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1월에는 호텔롯데 옆에 국내 최대규모의 롯데백화점을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10월에는 국내 최초의 패스트푸드 체인업체인 롯데리아도 설립했다.

 

전두환 정부도 박정희 정권만큼 롯데의 뒤봐주기에 적극적이었다. 

 

1979년 '12·12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의 국보위는 소공동 산업은행 부지를 롯데에 넘겨주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롯데는 이 땅에 주차장이 아니라 호텔 신관을 건축해서 호텔객실과 백화점 면적을 대폭 확대했다. 시내 중심가에 명물인 롯데타운이 생겨났다. 

 

롯데그룹 성장을 견인하는 삼두마차인 제과, 호텔, 쇼핑체제를 완성한 것이다.

롯데는 이 무렵에 중화학공업에도 진출했다. 

 

1970년대 말의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국영 한국종합화학의 자회사인 호남에칠렌과 여수석유화학 그리고 한국 정부와 일본 미쓰이물산이 50대 50 비율로 합자한 호남석유화학이 주도하고 있었다.

 

호남석유화학은 에칠렌(연산 35만t)을 베이스로 폴리에칠렌, 폴리프로핀 등의 석유화학제품의 대규모 공장을 전남 여천공단에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정부는 석유화학공업 민영화 정책의 하나로 이 회사의 정부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정부 지분 불하를 놓고 롯데와 현대그룹이 경쟁했으나 롯데가 1979년 1월에 정부 지분 40%를 160억원에 매입했다. 1997년 3월 롯데는 일본 미쓰이그룹이 보유 중이던 이 회사의 지분 33%중 23%를 마저 인수해서 이 회사의 최대주주가 됐다.

한국롯데는 1967년에 창업한 지 10여년만에 기업 인수 및 설립 등을 통해 식품, 호텔, 유통, 건설, 전자, 관광, 중화학분야에서 다각화를 통해 복합기업군을 형성함으로써 1970년대 말에는 10대 재벌에 진입했다.

 

롯데그룹은 식품, 유통, 서비스업 등 자본회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업종을 중심축으로 해서 복합기업집단을 완성했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