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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요" "그만두시오" 하는 이 있음) "여러분들이 제 말을 들어주셔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수의 의석으로 우리의 의사를 유린하고 우리는 소수로서 말이라도 입 벌려 놓고 하자는 것을 그 입마저 여러분이 봉쇄하려면 차라리 우리를 전부 몰아내고 여러분끼리만 총회 합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집어쳐요" 하는 이 있음) "내가 이 자리에서 쫓겨 나가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장내 소연)

1964년 4월 20일 제6대국회 제41회(임시회) 제19차 국회본회의. 이제 막 필리버스터에 들어간 재선 의원 김대중은 여당인 민주공화당 의원들의 야유에도 의연했다.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행위, 필리버스터의 기능과 본질을 잘 보여준 명장면이다. 당시 야당인 자유민주당 중진 낭산 김준연은 한일협정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이 1억3천만 달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집권여당인 공화당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낭산의 구속동의안을 발의했다. 이에 같은 야당인 민주당의 김대중이 5시간 19분의 필리버스터로 동의안 표결을 막아낸 것이다.

필리버스터는 다수당의 의회 지배에 맞서는 최후의 수단이다. 1937년 작 할리우드 흑백영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는 어쩌다 상원의원이 된 제퍼슨 스미스가 정상배들이 장악한 워싱턴 정계를 23시간 16분의 필리버스터로 응징한다는 스토리다. 586세대 중 이 영화를 보고 정치를 꿈꾼 자도 있었을 듯싶다.

우리 국회는 1973년 필리버스터를 폐기했다가 2012년 국회선진화법으로 다시 부활됐고, 2016년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위해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처음 행사했다. 당시 이종걸 의원은 12시간 30분이라는 필리버스터 신기록을 세웠다. 그랬던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를 위해 자유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선언하자 본회의 소집 거부로 원천봉쇄 중이다.

'국회 회의록'이 남긴 김대중의 필리버스터 연설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 교재로 손색없는 명문이다. 한국당 의원들이 김대중만한 필리버스터 연설을 남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말 밑천이 달려 원색적인 정권비판만 되풀이하다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는 그 자체로 보수 국민의 대의이고, 여당은 이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필리버스터로는 법안처리를 막을 수도 없다. 군사정권의 허수아비 정당인 공화당도 김대중의 필리버스터를 들을 만큼 들어주었고, 그래서 명연설이 남았다. 민주당 의원들의 일독을 바란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