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정점 후 줄다가 2015년 다시 증가
청장년 고용불안·인건비 상승등 추운 겨울
정부, 각종 혈세 뿌려도 '언 발에 오줌 누기'
18세기 조선의 인구는 800만 명으로 서울은 30만 명이 거주하는 최대도시였다. 서울의 술집은 상점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번창했다. 한양 성안에는 주등(酒燈)이 걸린 술집이 수천호이고 술집 종사자 및 관련 인구가 수만 명으로 한양성 거주 전체인구의 10%~20%를 차지했다. 술집은 한양 어디를 가든 마주치는 도회지풍경의 핵심이었다.
1766년경 종로에서 청계천 가까운 쪽에 위치한 '군칠이집'은 술독이 100여 개가 넘는 데다 각종 안주를 팔았는데 특히 개장국 요리를 잘해서 유명세를 탔다. 명성이 너무 높아 너도나도 군칠이집 간판을 걸고 장사하는 지경이어서 100년 후 한양에서 군칠이집은 서민들이 즐겨 찾는 주점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둔갑했다. 청계천 광통교 일대는 가장 번화하고 고급스러운 술집거리인데 기생이 술시중을 들고 매음도 가능한 색주가마다 문전성시였다. 술집이 성행하면서 서민들은 막걸리를, 양반들은 소주를 애용했는데 소주는 13세기 몽골침략 때 아랍에서 고려에 도입돼 조선시대 양반들 술상의 단골메뉴가 되었다.
남녀노소 모두 음주를 즐김은 물론 어린이들도 열 살 이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갈수록 독한 술 수요도 증가해 서울은 과음의 술꾼들로 넘쳐났는데 술집의 주 고객은 중인(中人) 이하의 서민들이었다. 풍속도 퇴폐해지고 폭음문화가 사회와 가정에 큰 해악으로 부상해 18세기에는 살인사건 중 음주가 치정(癡情) 다음으로 많았다. 양조용으로 쌀이 너무 많이 소진되어 쌀값이 뛰고 덩달아 물가도 오르자 영조(재위 1724~1776)는 빈번히 금주령을 내렸지만 폭음문화는 여전했다.
세계 189국 국민들이 한 해 동안 마신 술의 양이 2017년 356억ℓ로 1990년의 210억ℓ보다 무려 70%나 증가했다. 연간 1인당 알코올 섭취량도 1990년 5.9ℓ에서 2017년에 6.5ℓ로 늘었다. 금년 5월 독일 드레스덴대학의 임상심리·정신치료연구소는 전 세계인의 1인 평균 술 소비량이 2030년에는 7.6ℓ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전통적 주류소비 강세지역인 유럽과 미국에서는 술 소비가 둔화하고 있다. 세계 최고 주당대국인 러시아에서도 술 소비가 많이 줄었지만 중국, 인도, 베트남 등 중간소득국의 음주량이 급증한 때문이다. 위르겐 렘 드레스덴대학 교수는 베트남의 1인당 GDP 증가와 술 소비량 증가 사이에 상관관계가 높음을 증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술과 건강에 대한 국제현황보고서2018'에 따르면 한국인의 2015~17년 평균 알코올 섭취량은 10.2ℓ로 아시아에서 라오스(10.4ℓ)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최고 음주대국인 몰도바와 러시아, 프랑스 등에는 못 미치나 일본(8ℓ), 중국(7.2ℓ), 미국(9.8ℓ)보다 높다. 주목되는 것은 한국의 1인당 평균 알코올 섭취량이 1970년대에 정점을 찍은 후 줄어들었다가 2015년부터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5년의 한국인 평균 음주량을 지금보다 더 많은 10.6ℓ로 전망했다.
한국은 나라밖에서 벌어 먹고사는 고달픈 국가이다. 해외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어 국내의 산업구조 변화가 빠를 수밖에 없다. 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 그리고 생산의 디지털화 및 인공지능화 확대는 발등의 불이어서 한국 청장년들의 고용불안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내의 대표 자영업인 도소매, 음식, 숙박업체들은 온라인업체의 파상공세에 인건비 급등은 점입가경이어서 당장 올겨울 나기도 힘겨워 보인다.
정부가 각종 구실을 붙여 취약부문에 혈세를 뿌리지만 나라살림에 경고등만 켜질 뿐 언 발에 오줌 누기이다. 집값을 잡는다고 대출에 족쇄를 채우고 저금리로 선순환을 기대하나 부동자금만 눈덩이처럼 커질 뿐이다. 불황일수록 소비가 미덕인데 절대다수 국민들이 지갑을 닫는 것이 근본원인이다. 군칠이네에서 송년모임이라도 가져야 할 판이다.
/이한구 수원대 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