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은행 해직자 송년회
4일 경기은행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경기은행 동우회 송년모임이 진행됐다. 경기은행 동우회 김용중 회장이 진행한 이날 행사에서 경기은행 창립멤버인 정낙헌 씨가 창립 50년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

동우회 회원 50여명 한자리에…
1998년 갑자기 '퇴출' 1천명 실직
해직자협의회·장학회 아직 운영
"자부심만큼 아쉬움 커 매년 모여"

옛 경기은행 임직원 50여 명이 4일 인천 중구의 한 음식점에 모였다. 이들은 경기은행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경기은행동우회' 회원들이다.

경기은행동우회는 경기은행이 활동했을 때부터 운영된 임직원 모임이다. 경기은행이라는 이름이 없어진 지 20년이 넘었지만 경기은행에 몸담았던 이들은 매년 모임을 하며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경기은행은 1969년 12월 '인천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1973년 '경기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퇴출'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1998년 6월 점포 수 193개, 수신 금액 6조원, 여신 금액 6조원 규모의 경기은행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경기은행은 규모나 건전성 측면에서 퇴출을 생각한 이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규모가 작은 지방은행도 살아남았기 때문에 경기은행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시 영업부장이었던 경기은행동우회 김용중 회장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6월 29일 TV를 통해 '경기은행 퇴출' 소식을 접했다"며 "대출 관련 부조리는 없었다. 경인지역에 DJ나 YS 같은 유력 정치인이 있었으면 그러한 상황은 없었을 수 있다"며 억울해 했다.

퇴출 관련 절차도 빠르게 진행됐다. 그는 "이사회 의결 등의 결정이 없었던 상황에서 갑자기 정부가 퇴출을 발표했다"고 회상했다.

경기은행 퇴출 여파로 경인지역의 많은 기업이 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경기은행뿐만 아니라 대동, 동남, 동화, 충청 등 5개 은행이 퇴출 명단에 올랐다. 경기은행의 규모가 가장 컸다.

직원들은 "설마 우리 은행이 망하겠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퇴출이 결정됐고 전체 직원 2천200여 명의 절반 정도인 약 1천200명이 한미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머지는 거리로 내몰렸다. IMF 상황이라 다들 어렵게 생활했다고 한다.

은행은 사라졌지만 직원 간 유대는 끊어지지 않았다. 퇴출 직원 2천200여 명이 만든 '경기은행 해직자 협의회'는 아직 운영되고 있다.

경기은행 설립과 함께 만들어진 '(재)경기은행 장학회'도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다.

올해에는 19명의 학생에게 1천950만원의 장학금을 줬다. 경기은행 해직자 협의회 박천일 회장은 "경기은행에 다닐 때 자부심이 있었고, 퇴출되면서 억울함과 아쉬움이 컸기 때문에 지금까지 활동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은행동우회 김용중 회장은 "경기은행이 문을 닫은 지 20년이 지났지만 우리 동료들은 현재도 그때의 추억을 잊지 못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면서 "경기은행에 투자했던 주주님들과 인천시민, 경기도민 여러분께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남택영·정낙헌·이한구씨 등 경기은행 창립 멤버들도 나왔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