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401000272100013921

요즘 보도를 통해 낯익은 이름을 자주 접한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하명수사 의혹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이다. 그를 처음 본 것은 1996년 인천서부경찰서에서였다. 그는 이 경찰서의 형사과장이었다.

당시 형사과에는 민간인 신분의 '형사 아닌 형사'가 한 명 있었다. 이명세 영화감독이었다. 이 감독은 영화 '형사수첩'(가제)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강력반 형사들을 밀착 취재하던 중이었다. 강력반장이 "반원이 늘어 일손을 덜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이 감독은 형사들과 한 몸으로 움직였다. 일과 후 형사들이 찾는 선술집은 물론, 위험하기 그지없는 범인 체포현장까지 찰거머리처럼 따라붙었다. 이처럼 '현장밀착형' 시나리오 작업을 거쳐서인지 훗날 영화가 개봉됐을 때 관객들은 스크린에 흘러넘치는 리얼리티에 박수를 보냈다. 이 감독은 형사들이 조폭처럼 쇠파이프를 들고 다니거나, 범인의 아지트를 급습하기 전, 긴장을 풀기 위해 단체로 노상방뇨하는 모습까지 필름에 담았다.

당시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영화감독 한 명이 강력반을 따라다니는데 안전에 신경이 쓰인다"며 '이명세 형사'의 존재를 알려준 이가 황운하 과장이다. 마땅한 기삿거리를 찾지 못하던 차에 뜻밖에 '일용할 양식'을 구했던 기억이 새롭다.

더 강렬한 기억은 그가 파주의 집창촌을 쓸어버린(?) 사건이다. 수사과정에서 미성년자들이 대거 파주 용주골로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새벽 시간, 형사들을 총동원해 관할지역도 아닌 파주에서 윤락녀와 포주, 성매매자 등을 무더기로 잡아들였다. 이 일로 그는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는 찬사와 '공권력을 남용했다'는 비난을 동시에 샀다. '참으로 거침없는 경찰'이라는 게 당시 사건으로 각인된 황운하의 이미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인천서부서를 떠나서도 각종 수사에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수시로 검찰과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이명세 감독의 영화가 애초의 '형사수첩' 대신 '인정사정 볼 것 없다'란 뜻밖의 제목으로 개봉되는 것을 보면서 맨 처음 떠오른 인물도 황운하였다. 사실 영화 속 박중훈의 실제 모델은 인천서부경찰서 강력반 박모 형사다.

'풍운아', '정치경찰' 등 수많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그가 곧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란 책을 낸다고 한다. 또 얼마나 거침없는 내용이 담겨 있을지 사뭇 궁금하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