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 캐물으면 '트라우마' 걱정
대처방법 모른채 책임은 '부모 몫'
제도 부재가 '개인간 문제'로 비화
5세 남자 아이를 키우는 A(36·용인)씨는 이번 성남 어린이집 사태를 보며 불안에 떨었다.
얼마 전 어린이집 화장실에서 다른 남자 아이의 바지를 내리며 장난쳤다는 아이의 말이 떠올라서다.
당시엔 아이들끼리 장난 정도로 치부하고 '하지 말라'는 경고만 했는데, 이번 사태를 보니 "더 엄격하게 혼냈어야 했었나"하는 자책도 들고 언제 그 아이 부모가 문제제기를 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결국 A씨는 최근 아이 부모에게 연락해 정중하게 사과했다.
6살 남아의 엄마인 B(32·서울)씨는 이번 사건 이후 아이에게 "별일 없지"라고 물었다가 충격에 빠졌다.
어린이집 낮잠시간에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데, 한 여자아이가 B씨 아이의 바지 위로 손을 올려 특정 부위 부근을 문질렀다는 것이다.
아이는 구체적으로 행위를 묘사하기까지 했다. B씨는 "두 달 넘게 지난 일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해당 아이 부모에겐 뭐라 말해야 할지도 전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성남 어린이집 사태는 아동 간 성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특히 어린이집·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둔 부모들은 언제 우리 아이가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지 모르고, 이런 일이 발생해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서다.
게다가 문제를 제기하려 해도 '예민한 부모'로 낙인 찍힐까 전전긍긍하는가 하면, 아이에게 더 묻고 싶어도 혹여 트라우마로 남을까 겁나 마음만 졸이고 있다. 실제로 성남 어린이집 사태의 피해 부모는 '2차 가해'를 토로했다.
부모들의 불안에도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유아를 돌보는 기관은 '쉬쉬'하기 바쁘다. 아동 간 성 관련 사고를 대처할 매뉴얼이 없어 사고가 발생해도 보고할 의무도 없고 기관 내에서 갈등 조정을 하게끔 돼 있다.
자연히 기관에선 외부로 새어나가는 것을 경계해 합의 종용에만 급급하다. 이번 성남 어린이집 사태에서도 해당 보육시설이 성남시로 문제 사실을 보고하기까지 3일이 걸렸다.
더 큰 문제는 상위기관이 이 문제를 인지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어린이집, 유치원 모두 '의무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개입할 근거가 없다.
그저 보고라도 들어오면 여성가족부 산하 해바라기센터 등 상담기관에 찾아가라는 조언밖에 할 수 없다.
결국 모든 책임은 부모에게 쏠린다. 성남 어린이집 사태에서도 '가해 부모가 잘 못 가르쳤다'는 식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일부에선 피해부모에게 일을 키웠다는 비난도 일었다.
해당 기관 및 자치단체와 정부 등의 '제도의 부재'가 부모와 아이들 '개인 간 문제'로 비화돼 고소 고발로 이어지는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김동필기자 phii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