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나 상품 등 어떤 조사대상의 이미지를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인화 기법'이라고 한다. 조사대상에서 떠오르는 성별, 연령, 옷차림 등에 관한 이미지를 취합해 하나의 인물형으로 도출해 내는 기법을 말한다. 가령 와인 강사들이 떫은 맛, 신맛, 단맛 등 각기 다른 맛의 와인을 소개하면서 '마초형'에서 '청순가련형'에 이르기까지 개성이 뚜렷한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일종의 의인화기법이라 할 수 있다.
2003년 한 채용정보업체가 이 기법을 통해 당시 국내 6대 그룹에 대한 이미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조사 결과, '삼성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30대 초반으로 큰 키에 지적이고 세련된 전문직 남성'이 연상된다고 응답했다. '현대맨'에 대해서는 '40대 초반의 뚱뚱한 체형으로 투박하고 유행에 둔감한 생산직 남성'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물론 16년 전의 조사 결과인 만큼,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볼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대우맨'의 이미지는 어떨까? 대우그룹은 해체된 지 몇 년 지난 터라, 당시 조사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우맨'의 이미지는 어떤 형태로든 분명 존재했을 시기였다. 개인적으로는 '대우맨' 하면, '나이답지 않게 의리를 중히 여기는 중년남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의~리!'라는 말을 유행시킨 한 영화배우보다는 좀 더 묵직한 캐릭터다. 이러한 이미지가 각인된 것은 지난 2014년 경인일보와 인천경영포럼이 주최한 조찬강연회에서다. 이 강연회의 강사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었는데, 인상적인 것은 김 전 회장과 한솥밥을 먹던 많은 이들이 행사장을 찾아 김 전 회장을 보필(?)하는 모습이었다. 그룹이 해체된 지 15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대우맨'들에게 그는 여전히 '회장님'인 듯했다. 공교롭게도 그날 강연 제목은 '사람을 키워야 미래가 있다'였다. 행사장의 대우맨들은 김 전 회장이 '키운' 사람들이었다.
김 전 회장이 타계하면서 전국의 '대우맨'들이 빈소에 총집결했다고 한다. 대우맨들은 지금도 해마다 창립기념일인 3월22일에 한 자리에 모여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기업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한 축은 기업 고유의 문화일 것이다. '대우맨'에게 '의리'는 과거에 그들이 자부심으로 일구었던 기업문화가 아닌가 싶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