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의 구시가지는 민속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독일 로텐부르크, 영국 체스터, 에스토니아 탈린에 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다. 풍경도 그렇지만 놀라운 건 그런 도시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어린이와 학생들이 많다. 이웃 일본도 마찬가지다. 민속마을이 잘 조성된 것은 물론이고, 그곳 역시 아이들로 북적댄다. 어린이들은 그곳에서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고 미래의 방향을 찾는다.
안동에 가면 들르는 곳이 하회마을이다. 하회마을은 낙안읍성마을, 아산 외암민속마을과 함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마을 중 하나다. 낙동강 줄기가 마을을 휘감아 흐르고,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곳은 연꽃이 물 위에서 피어난 듯한 지형이라 해서 '연화부수형'으로 불린다. 양진당 등 고택이 운치를 더하고, 골목골목 투박한 토담과 포장되지 않은 언덕길은 조선시대로 돌아간 느낌마저 든다.
보릿고개를 넘기고 이제 막 밥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만한 1974년, 경부고속도로 신갈IC에서 멀지 않은 용인 기흥 보라리에 한국민속촌이 문을 열었다. 조성 당시 막대한 국비가 지원됐다. 민속촌을 통해 우리 조상이 살던 터전과 생활 모습의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는 교육적인 목적이 컸다. 볼거리가 없던 시절이라서 그런지 개장되자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학생들은 누구나 한 번쯤 소풍장소로 이곳을 찾았다. '촬영협조: 한국민속촌'이란 문구가 익숙할 만큼 드라마, 영화 등 모든 시대극은 이곳에서 찍었다. 민속촌은 에버랜드와 함께 용인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부상했다. 지난해에만 130여만명이 민속촌을 찾았다.
한국민속촌이 용인을 떠난다는 보도가 나왔다. 65만9천여㎡ 부지의 반을 용인시에 기부하고 나머지 부지 개발에 따른 사업성 검토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미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민속촌은 주말이면 방문 차량으로 도로가 몸살을 앓는 등 각종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45년 전 만 해도 깡촌 가운데 있던 민속촌이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선 돈이 되는 개발 앞에서 자연과 민속문화는 무릎을 꿇는다. 민속촌은 떠나는 게 아니라 쫓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아쉽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