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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부터 Z까지, 시대의 유행은 모두 그들로부터 시작돼 종말을 맞는다. 황유미의 '오늘도 세계평화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는 오늘을 살아가는 밀레니얼 세대의 삶을 조명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다. 매스컴이 개성 강하고 개인주의적인 이미지로 주목해 온 세대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 앞에 닥친 현실에 주목한다. 단군 이래 최고의 취업난에 빠진 그들은 학자금 대출에 쫓기며 내 집 마련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작가는 발랄하고 통통 튀는 문체를 통해 그들을 둘러싼 일상을 웃기고 슬프게 고발한다.

소설은 마블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법한 영웅을 현실 세계로 과감하게 끌어들인다. 이야기는 폭발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동시에 현실의 이면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표제작은 초능력자 작업복 세탁소 업체 대표인 화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세계 히어로들의 옷을 세탁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러나 엄마는 늘 화자에게 번듯한 직장을 요구하고 갈등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세계평화' 세탁소의 의류들이 도난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장난해요? 팬티가 없으면 어떻게 출동하라는 거죠?"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동네 세탁소의 작은 사건이지만, 이는 곧 화자에게 '세계평화'와 연결되는 일이다. 히어로와 빌런들의 작업복을 세탁할 누군가가 없다면 세계는 하룻밤 새 끝날 것이라는 믿음. 남들의 시선 따위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화자의 대범함에 우리는 용기를 얻는다.

작품 속 인물들의 모습은 곧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현주소를 나타낸다. 그들의 질긴 작업복 뒤에는 바둥거리며 현실을 받치고 있는 두 다리가 숨어있다. 황유미는 '작가의 말'에서 "조직에서 일하건, 프리랜서건, 혹은 자영업이라도, 업의 형태야 어떻든 다들 버티느라 애쓰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책에는 힙(HIP)의 탄생과 몰락을 담은 '노힙스터존', 가슴 속 비밀을 품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강시의 심장에는 도깨비가 산다', 커밍아웃 후 한국을 떠난 오빠와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 '연극이 끝난 후' 등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오늘을 힘차게 견뎌내는 '히어로' 밀레니얼 세대들에게는 위로와 응원을 안겨주는 책. 

/유송희기자 ys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