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잡은 이들 여전히 이익만 좇고
청산대상 집단 기득권 유지위해 몽니
2020년 SF의 꿈 간절함 향해 비행
노동과 가난 열악한 자리 벗어나고
성찰의 지성 삶의 일상되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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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공상과학에서나 나올 것 같았던 2020년이 불과 며칠 남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놀랍게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의 낯익은 듯 낯선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정말이지 2020년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런데도 눈을 돌려 주위를 보면 여전히 100여 년간의 혼돈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놀라운 성취를 이룩했고 그때와 같은 결핍과 폭력의 시간은 사라진듯하다. 그렇지만 한 걸음만 더 우리 사회의 속살로 들어가면 그때보다 더 놀라운 야만을 수없이 보게 된다. 가난 때문에 죽어가는 이들과 권력의 횡포에 삶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의 현실은 결코 그때의 폭력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노동자는 죽어가는데, 재벌과 고위 관료와 법조계 인사는 처벌조차 받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온갖 망발과 탈법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언론이 일등신문이라고 자부한다. 교육은 사람의 됨됨이를 말살하는 가장 빠른 길이 되었다. 우리는 정말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성공한 것일까.

이런 격차와 역기능을 사람들은 20대 80 사회 때문이라거나, 또는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진단이다. 이 말은 현상과 원인을 구별하지 못한 채 그저 보이는 사실을 뒤집어 말하고 있을 뿐이다. 참 "멋진 헛소리"다. 듣기에는 뭔가 있어 보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인을 명확히 밝혀 우리 사회와 문화의 문제를 뿌리에서부터 해결하고, 가야 할 길을 명확히 보여주지 못하면 불평등과 퇴행은 되풀이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잘못된 체제와 독점적 관행이 여전하기 때문에 생긴다. 특권을 독점한 집단이 강고하게 공공성을 무시한 채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구조적 불평등이 만연한 것이다. 법과 지대를, 자본과 전문가 인증을 소유한 그들이 권한을 독점하고 공동체와는 전혀 무관하게 자신들만의 이해 놀음에 빠져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지난 100여 년의 시간을 달려왔다. 그럼에도 그 질주는 다만 자본의 불빛이거나, 독점적 권력에 동참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이었을 뿐이다. 현실이 그럴망정 규범과 의식에서라도 공동체 정신과 공동선을 지향한다면 달라질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 문화적 자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달력의 시간은 SF적이지만 현실 사회의 시간은 100여 년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몇 달간의 검찰 놀이는 물론,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작태를 냉정히 바라본다면 이 말이 결코 냉소로만 보이진 않을 것이다. 양극화와 불평등을 말하지만, 자본을 향한 몽상은 계층과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개혁을 외쳤던 함성을 딛고 권력을 잡은 이들이 여전히 그들만의 이익을 향해 불나비 몽상을 계속한다. 탄핵과 함께 청산되었어야 할 집단이 언제나처럼 자신의 낡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온갖 몽니를 부리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불의한 구조와 체계에 있으며 이를 지속시키는 사회 문화적 독점, 기득권층의 지배 구조에 있다. 또한 이를 흉보면서 닮는 대중들도 결코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의 꿈은 일상에서의 경험과 정보를 정리하는 과정이면서 또한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 간절함을 담고 있다. 그래서 2020년 SF의 꿈은 몽상과 간절함의 골짜기를 비행한다. 그 꿈은 낡은 언론이 본질적으로 탈바꿈하는 몽상, 법이 자신을 빙자하여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마저 빼앗길 사람을 지켜주는 참된 법이 되는 간절함으로 이어진다. 나비의 꿈은 몇 년을 땅 밑에서 선탈을 열망했던 이들의 몫이다. 100년에 걸친 인고의 시간이면 이제는 선탈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노동과 가난이 그 열악한 자리를 벗어나길 꿈꿔도 좋을 것이다. 교육이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되살아나길, 그래서 대학이 성찰의 인간을 위한 학문의 터전으로 거듭나길 꿈꾼다. 자본과 기술이 삶을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향해 탈바꿈하길, 공동선과 규범이, 성찰의 지성이 삶의 일상이 되길 꿈꾼다. 나비의 꿈이 SF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2019년은 이 꿈이 몽상에 그치는 마지막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