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 정주영,구인회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재계 1세대가 '산업보국(産業報國)'으로 한국 경제의 기초를 세웠다면, 이건희 정몽구 구자경으로 대표되는 재계 2세대는 '기술입국(技術立國)'으로 우리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이병철 삼성 창업자는 생전 "국가가 살아야 기업도 산다"는 '산업보국'을 늘 가슴속에 간직했다. 물자 생산과 고용 창출, 납세로 어떻게든 국가에 도움이 되자는 것이었다. 구인회 LG 창업자 기업이념도 '산업을 일으켜 나라에 보답한다'였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도 "임자 해봤어?"라는 명언을 남기며 위기 때마다 조선, 자동차 등 신사업을 통해 수출 한국을 창조했다.
이제 한강의 기적을 이끈 재계 1세대는 거의 세상을 떠났다. 구인회 LG 창업 회장(1969년),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1987년), 최종현 SK 창업 회장(1998년)은 2000년 전 별세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은 2001년, 대한항공 창업주인 조중훈 한진 회장은 2002년 그리고 며칠 전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타계했다.
이들의 유지를 받든 재계 2세대는 선친의 기업에 기술을 입혀 더 강하게 키웠다는 특징이 있다. 삼성 이건희, LG 구자경, 현대 정몽구 회장이 그런 경우다. 특히 LG 구자경 명예회장은 1995년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기술입국'과 '인화'를 최고의 경영가치로 삼으며 그룹을 이끌었다. 이는 전자, 화학산업이 LG의 간판 글로벌기업이 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국내 최초로 해외 생산공장 설립을 주도하고 외국기업과 합작 경영을 추진한 것도 구 명예회장이었다. 특히 금성사(현 LG전자)가 1982년 미국 앨라바마주 헌츠빌에 세운 컬러 TV 생산공장은 우리 기업의 첫 해외 생산기지다. 이는 LG가 글로벌기업으로 나가는 기초가 됐다. LG트윈스가 프로야구에 새바람을 일으킨 '자율야구'는 구 명예회장이 주창한 '자율과 책임경영'에서 비롯됐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94세 일기로 별세했다. 이제 재계 2세대는 병상에 있는 삼성 이건희 회장과 현대 정몽구 회장만 남았다. 우리 정치인들이 입으로만 보국을 외치고 있을 때, 재계 2세대는 정치적 외풍과 재벌이라는 부정적 인식 속에서 우리 산업을 고도화하며 '수출입국'의 초석을 다졌다. 그 선두에 구 명예 회장이 있었다. 한국 산업화의 기틀을 만들어 준 구 명예회장의 명복을 빈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