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떼려야 뗄 수 없는 특별한 인연
당시 기사·조문객 행렬이 '증명'
오늘부터 5일간 인천대서 공연
17일부터 백범 김구의 항일독립운동을 다룬 뮤지컬 '김구 가다보면'이 인천대학교 대강당에서 21일까지 5일간 펼쳐진다.
인천의 대표 극단 '십년후' 작품이다. 백범 뮤지컬이 왜 인천 극단에 의해 인천 무대에 오르는 것일까. 백범 스스로 말했듯이 그에게 있어 인천은 의미심장한 역사지대이다.
백범과 임시정부 요인들이 해방 후 귀국했을 때 동아일보(1945년 12월 4일자)는 '임시정부 김구 주석과 인연이 깊은 인천에서는 금번 김구 주석의 환국을 환영'하려고 봉영회를 거행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당시에는 누구든지 김구와 인천의 인연이 각별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의 인천 사람들은 백범과 인천의 특별한 관계를 그리 많이는 알지 못하고 있다.
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에서는 올해 1945년부터 1949년까지 김구와 관련한 신문기사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비운의 역사 현장 - 아! 경교장'이다.
이 책에 실린 백범 서거 이후의 인천 관련 기사를 통해 인천 사람들이 김구를 얼마나 특별하게 대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백범 서거 하루 뒤인 1949년 6월 27일 인천 삼균주의 학생동맹과 청년동맹은 추도대회를 마치고 시위를 하려다가 경찰에 제지를 당했다.
어쩔 수 없이 해산한 이들은 추도사와 추도시를 경교장에 마련된 영전에 보내 애도를 표했다.
한독당 인천시당이 마련한 인천 분향소에는 장영복 경기도경찰국장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물론이고 농촌의 노파, 길가는 지게꾼, 눈물을 머금은 중국인들이 찾아들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학생들도 분향소를 찾아 장시간 울면서 떠날 줄을 몰랐다.
사흘 후인 29일에는 제일방적공사 인천공장 남녀 종업원 대표 100여 명이 부의금과 광목 등 시가 30여만 원에 달하는 금품을 전달했다. 당시 30만 원이면 웬만한 사업을 벌일 수 있는 큰 금액이었다.
또 부평에 사는 김윤옥(40)이란 이는 백범이 타계한 26일부터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인천 분향소는 9일 동안 운영되었으며 7월 5일 장례식날에는 애도식을 가졌다.
서울 장례식에 가지 못하고 인천 애도식에 참여한 사람이 7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인천 분향소에는 황해도나 백령도, 강화도 등 먼 거리에서도 조문객이 몰렸다.
최근 한일 갈등이 계속되면서 '독립운동은 못 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말이 유행이다. 인천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지닌 백범 뮤지컬, 인천사람이라면 한 번은 봄직하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