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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인천 위장취업 저항참여
전국 최초 여성노조위원장 탄생
5·3민주항쟁 '6월항쟁' 디딤돌로


인천지역 민주화운동의 산증인들이 인천의 민주화운동 역사를 처음으로 총정리한 책 '인천민주화운동사'를 집필 2년 만에 펴냈다.

인천민주화운동사편찬위원회 이우재 위원장(사진·온고재 대표)은 18일 "이 땅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쟁취됐는지 인천의 미래 주역인 학생과 청년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우재 위원장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 인천은 서울의 조연 취급을 당했다고 했다. 수도 서울의 그늘에 가려 자기만의 민주화운동 이야기를 써내려가지 못했다는 거다. 인천민주화운동사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이우재 위원장은 "4·19 때만 해도 인천 사람들은 정치 중심지인 서울에 가서 시위를 하는 등 종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며 "하지만, 이런 인접성은 인천이 노동운동, 여성운동의 성지가 되는 결과를 낳았고, 이런 부문별 운동사에 비중을 뒀다"고 말했다.

1970~80년대 정치적 민주화운동이 민주노조 운동으로 번져나갈 무렵 서울의 대학생들은 가까운 인천의 부평·주안 공단으로 위장 취업을 하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와 더불어 임금차별과 남성 중심의 어용 노조를 타파하기 위한 여성운동의 불길도 함께 피어올랐다. 동일방직에서는 전국 최초의 여성 노조위원장이 탄생했다. 당시 노동운동만큼은 인천이 중심이 됐다.

이우재 위원장은 "정치적 민주화를 부르짖었던 때 노동자에게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으면 진짜 민주화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인천에서 터져나왔다"며 "이런 목소리를 낸 여성 노동자에 똥물을 끼얹은 기가 막힌 사건(동일방직 똥물 투척 사건)이 벌어진 곳도 인천이었다"고 했다.

1986년 인천 5·3 민주항쟁은 이듬해 6월 항쟁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정파와 노선, 사상을 떠나 '대통령 직선제'라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게 된 계기가 바로 인천 5·3 민주항쟁이었다고 이우재 위원장은 평가했다.

그는 "5·3을 겪으면서 각자의 목소리만 내고 분열됐던 운동권이 자기반성을 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됐고, 국민 대중이 길거리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1987년 직선제 쟁취 이후 민주화운동은 시민운동으로 성장해 나갔다. 운동권이 빠져나간 자리를 지역성을 갖춘 시민단체가 메웠고, 선인재단 학원 민주화,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 계양산 골프장 반대 운동으로 이어졌다.

인천민주화운동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 연구소가 기획한 지역민주화운동사 연구총서 시리즈의 6번째 책이다. 이우재 위원장을 비롯한 15명의 편찬위원, 12명의 집필진이 참여했다. 출판기념회는 19일 오후 6시 30분 인천 남동구 샤펠드미앙 1층에서 열린다.

이우재 위원장은 "어른들에게는 예전 기억에 대한 회상이지만,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이 땅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얻어진 건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