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한국당 표면상 격렬 대립속
서로에 대한 분노로 존립근거 다져
송나라 신유학자들 왕도정치 구현
화해질서·도덕 우월가치로 내세워

정치인들 의혹 '수신' 중요성 알아야

월요논단 홍기돈2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온 나라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다. 정부·여당이 지지하는 장관 후보보다 이를 비난하는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더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항변할 때부터 감지하기는 했다. 표면상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으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서로에 대한 분노를 자양분 삼음으로써 각자의 존립 근거가 견고해지는 지점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6일 자유한국당은 국회 경내에서 집회를 가졌고, 이때 다른 당 국회의원·당직자 및 국회 직원에게 폭력과 성추행이 저질러졌다. 자유한국당 지지자들 나름의 존재 증명인 셈이다.

선거법 개혁안이 너덜너덜 누더기로 전락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다시 한 번 실감된다. 민의(民意)를 보다 폭넓고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하여 선거제는 마땅히 개혁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자유한국당은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취지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표면상의 격렬한 대립에 아랑곳없이, 낡은 선거법 체제를 가능한 유지하면서 공생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거대 양당에게는 이득이 되는 것이다.

정치 지형의 변화는 없이 상호 적대적인 양상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사법시스템의 작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기에 이르렀다. 19일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공판에서 검찰은 사실상 재판장을 흠집 내고 망신주는 시위를 벌였다. 10일 공판에서 재판부는 조국·정경심 편에 섰다고 몰아붙이는 검찰 측에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고 한다. "제 판단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검사님은 검사님 판단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 안 해 봤습니까?" 이 순간 정부·여당의 반대편에 놓인 검찰의 자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불편부당한 심판자를 자처하고 있으나, 자신의 막강한 권력에 후원이 되어 줄 정치 세력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혐의를 검찰이 떨쳐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분노만 확대 재생산될 뿐 상황을 타개할 전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신유학의 성립 과정을 떠올려본다. 신유학을 주창했던 송나라의 지식인들 또한 이처럼 무거운 상황에 직면했었기 때문이다. 거란의 요(遼), 여진의 금(金), 탕구트의 서하(西夏), 베트남 방면의 대월국(大越國) 등과의 치열한 각축 속에서 한족의 송(宋)은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신유학자들은 전쟁 대신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가치를 가다듬었다. 각각의 국가들은 하나의 틀(문명권) 내에서 서로 어울려 공존해야 하는 한편, 나름의 전통과 문화에 입각한 특수성(개별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무력이 행사될 위험을 제어하기 위해서 신유학자들은 정통(政統)과 도통(道統)을 분리하였다. 백성·신하 위에 군림하며 힘으로써 통치하였던 황제들의 폐도(覇道) 정치를 거부하고, 고대 성왕에서 공자에게로 이어졌던 덕에 입각한 왕도(王道) 정치를 잇겠다고 표명하였던 것이다. 왕도를 따르고 구현하기 위해서는 신유학자 자신도 스스로 부단하게 수양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학문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하여 도덕적 권위를 마련해 나가는 수신(修身)의 방편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물론 전근대의 가치관을 현시대에 그대로 접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신유학이 첨예한 대결 구도를 화해의 질서로 해소해나간 측면이라든가, 도덕의 권위를 무력·금력 따위보다 우월한 가치로 곧추세워 나간 과정 등은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예컨대 나경원·조국·김성태로 대표되는 정치인들을 둘러싼 온갖 의혹들은 수신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새삼 깨우쳐 주는 바 있지 않은가.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에 안착해서는 이러한 현실 너머로 나아갈 희망을 일구어낼 수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보다 더 커다란 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