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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의 경영권 분쟁은 우리나라에선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거의 모든 재벌가가 상속문제를 둘러싸고 부자간 형제간 심지어 시숙 간, 숙질 간 피 튀기는 싸움을 벌였다. 마치 세렝게티를 둘러싼 사자들의 권력투쟁을 보는 것 같다. 최근 이런 분쟁으론 롯데가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형제까지 나서 얽히고설키며 벌였던 경영권 다툼은 신동빈 회장의 승리로 끝났지만, 기업이미지는 크게 실추됐다.

대표적 경영권 분쟁은 현대가였다. 2000년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정몽구와 정몽헌은 그룹 패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언론은 이 싸움을 '왕자의 난'이라고 명명했다. 결국,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두 아들을 불러 '3 부자 퇴진'까지 선언했지만, 장자 정몽구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현대자동차를 그룹에서 떼어내 독립했다. 그 후 정몽헌 회장이 투신자살하면서 현대그룹을 맡은 현정은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두고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시숙의 난'을 벌였고, 현대건설 인수전 때는 시아주버니인 정몽구 회장과 한판 붙었다.

'공동 소유, 공동 경영'으로 '형제경영'의 모범을 보인 두산그룹도 창업 109주년인 2005년 박용성 회장의 취임을 두고 전임인 박용오 회장이 반발하면서 '형제의 난'을 불러왔다. 비자금 조성내용을 검찰에 투서하는 등 막장 싸움으로 번졌다. '재산' 앞에선 가족애도 인화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박용오 전 회장은 집안에서 제명됐고, 이후 2009년 자살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한진가에서 한바탕 전쟁이 시작될 모양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반기를 들었다. 권력에 도전하는 것은 그만큼 힘이 있다는 의미다. 지주회사 한진칼의 지분은 남매간과 모친 등 네 사람이 엇비슷해 경영권 분쟁이 예상됐다. 문제는 그게 한진가라는 점이다. '땅콩 회항' '물컵 갑질' 등 자식들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상상 못 할 곤욕을 치르던 고 조양호 회장이 생을 마감한 게 불과 8개월 전이다. 그런데 지금 문제의 주역들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한진 칼은 '강성부 펀드' 등 외부 주주들의 지분율이 유난히 높은 기업이다. 자칫 다음 주주총회에서 조 씨 일가는 경영권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재벌가의 속성인가. 생각할수록 한심할 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