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큰영향 미치는 장내 유해균
유익균 많으면 날씬함 유지 쉬워
우리 마음 속도 마찬가지로 작용
고독을 택하면 유해균 키우는 것
몰두할 수 있는 즐거운일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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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비만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외모지상주의라는 시대적 가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비만은 건강을 해치는 대표주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런 관심을 반영해서인지 아침방송만 해도 비만 탈출 비법을 종종 소개합니다. 저 또한 나이가 나이인지라 건강 관련 방송을 보면 일단 채널을 고정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요즘 방송을 보니, 비만의 원인이 단지 과식에만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과식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장내에 있는 유해균이라고 합니다. 우리 장 안에는 수많은 균이 존재하는데, 유해균이 유익균보다 많으면 아무리 적게 먹어도 살이 찐다는 것입니다. 반면 유익균이 더 많은 사람은 설사 과식을 좀 하더라도 날씬한 몸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비만을 탈출하려면 가장 먼저 장내에 유익균을 키워야 하고, 운동이나 식이조절은 그다음이라는 것이지요.

가만히 보면, 유익균과 유해균은 장내에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서도 똑같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연말이 되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한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이 고백성사를 하러 성당을 찾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작년에 범한 죄를 또 짓고 같은 고백을 반복합니다. 어느 꼬맹이는 고백소에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동생에게 욕도 했고, 서로 백 번도 넘게 싸웠어요"라고 말합니다. 어떤 청년은 직장동료가 너무 미워 마음을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합니다. 중년의 주부는 "남편만 없으면 죄지을 일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불안과 분노를 안고 살다 보면 불면증도 쉽게 찾아오고 마음의 괴로움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그저 우울하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은 일단 서로 같이 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서로 좋아서 결혼하지만 같이 살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받을 일이 생깁니다. 피를 나눈 가족조차도 어쩔 수 없는 갈등에 시달립니다. 하물며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어떨까요. 아주 작은 이해관계 하나로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달팽이가 껍질 속에 숨듯,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 스스로 고독을 선택합니다. 관계를 끊고 혼자 있기를 택하는 건, 괴로움과 우울에서 벗어나는 데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장에 빗대어 말하면, 고독을 선택하는 건 유해균을 키우는 행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유해균이 유익균보다 많은 한 우리의 삶은 결코 행복하거나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좀먹는 걱정과 슬픔을 날려버리려면, 마음 안에 유익균을 대량 투입해야 합니다. 마음의 유익균 중 대표격은 '몰입'입니다. 주어진 일에 보다 열정을 갖고 몰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천직이라 여기고 사랑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가치를 느낄 만한 대상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유익균은 '명상'입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스스로를 들여다보면서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명상하는 사람은 절대로 절망이나 슬픔에 빠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 유익균은 여행이든 운동이든 자기가 제일로 좋아하는 취미에 심취해 사는 것입니다. 취미를 즐기는 사람은 짜증 내는 일이 없습니다.

투명한 유리컵에 물을 오래 담아두면 앙금이 생깁니다. 앙금을 없애려고 수저로 휘적거리면, 물만 흐려질 뿐 컵 바닥에 눌어붙은 침전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럴 땐 앙금이 있는 채로 수돗물을 콸콸 쏟아부으면 됩니다. 힘찬 물줄기에 앙금이 사라지고 어느덧 컵은 깨끗해집니다. 우리 마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 안의 괴로움, 슬픔, 우울 짜증을 억지로 없애려는 건 마치 비만에서 탈출하겠다고 억지로 배고픔을 참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억누르고 참다가 결국엔 폭발하고 맙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면 유익균을 취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겠다고 그에 집중하기보다, 차라리 내가 몰두할 수 있는 일, 내 마음에 안정을 주면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장에 좋은 유익균을 넣어주듯, 우리 마음 안에 유익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불어 넣어주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

/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