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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가 다 저물었다. 지난 1년의 족적이 만족스러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후회와 아쉬움이 짙어지는 시간이다. 크레타 섬의 자유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I hope for nothing).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I fear nothing). 나는 자유롭다(I am free)"는 묘비명을 남겼다. 사람들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꼭 닮은 카잔차키스와 같이 초월적 자유를 만끽하길 희망하지만, 현실에선 바라는 것도 두려운 것도 많아 스스로를 속박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의 연말 정서는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가깝다.

어디 보통 사람들 뿐이랴. 대한민국이 지난 한 해 겪은 다사다난을 생각하면 참 용케도 버텨왔다 싶다. 압권은 '조국사태'였다. "누군가의 인격을 시험해보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보라"고 한 링컨의 명언은 유효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족의 반칙과 편법은 그가 권력을 가지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 전 장관의 입과 혀는 자신과 가족을 덮친 화와 근심의 문이 됐다. 불행한 건 조국의 불운이 국민의 불화로 전이된 점이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분리된 광장정치는 국회가 중심인 대의민주정치의 몰락을 예고했다. 진보의 인격이 드러났지만 보수의 품격은 바닥을 긁었고, 국민을 통합할 정치력은 고갈됐다.

경제는 "바닥을 쳤다"는 정권의 호언과 달리 무저갱을 향해 자유낙하 중이다. 직장인이 아파트를 사기 위해 한푼도 안쓰고 돈을 모아야 할 햇수가 점점 연장되더니, 이제 평생을 모아도 안될 지경이 됐다. 쉬어야 할 노인들의 일용직은 늘었지만 일해야 할 청장년의 일자리는 줄었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북한이 막말로 모욕하고, 중국이 홀대할 때 마다 화가 솟구치는데, 정작 대통령이 인내하니, 굴욕이 일상이 됐다. 국민들은 정권과 정치권에 크게 바란 것이 없다. 양처럼 착한 국민에게 정치는 혼란으로 두려움을 심고, 맹목적인 진영 전쟁에 부역을 요구했다.

불온하고 각박한 기운이 2019년 마지막 날과 함께 소멸되길 바란다. "작년도 금년도 꽃은 항상 아름다운 그대로 피고 있는데 세세년년 사람은 같지 않다"는 고문진보의 글귀 대로, 새로운 소명을 받은 새 인물들의 출현을 고대하며 올 한 해를 보낸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