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면책등 '국회의원 특권' 과감 철폐
공천제 바꾸고 낙하산 기관장 풍토 없애야
국회, 시민대표 사명감 대의기구 인식 필요
'준연동형비례제' 진영정치 완화 수단 한계


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
미국정치에서 극단의 정치가 사라진건 건국 후 100년쯤 지난 뒤였다. 연방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은 상대를 경쟁자로 인식하지 않고 적으로 인식하는 정치문화가 팽배했다. 독립전쟁이 끝나고서야 정치적 반대자를 파트너로 인식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대의 진입이 상호 관용의 전통을 마련해나갔다. 그러나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남북전쟁은 또다시 미국정치를 극단적 적대의 정치로 몰아갔다. 남북전쟁 세대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극단의 정치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또한 인종차별이라는 벽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면서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법칙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미국정치도 처음부터 상호 배려와 관용이 자리 잡지 않았으며 상대를 파트너로 인식하는 데 긴 시간의 기회비용을 지불했다.

한국정치의 적대적 구조는 점점 강화되는 추세다. 박근혜 탄핵 이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국민적 에너지는 이미 사라졌고, 1980년대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세력이 정권을 잡은 지금 그 세력조차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진보진영의 무기인 도덕적 순결성조차 의심받고 있다. 예단은 이르지만 이른바 '하명수사 의혹'과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선거개입 의혹 사건 등은 집권핵심의 도덕성을 의심하기에 이르렀고, 86세대의 민주화 훈장의 빛도 바랬다. 이들조차 기득권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정치는 정치의 일상 문법으로 연명하는 사회의 직업군 중의 하나로 전락했으며, 특권을 쫓는 권력지향적 집단, 인생역전을 위해 투신하는 승부의 세계로 추락했다.

정치가 바뀌기 위해서 보다 본질적인 것을 고민할 때가 됐다. 의원들의 특권을 없애야 한다. 특권이라면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이 떠오른다. 이는 행정부와 입법부와의 관계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 정치적 특권들이지만, 과감하게 손 볼 필요가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화려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세비를 줄이고 여행 시 받는 지원도 없애야 한다. 그밖에 무수히 많은 개인적 차원의 특권을 줄여나가야 한다. 막스 베버가 말하는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인들로 거듭 태어나지 않으면 국회의원들의 사생결단식의 행태는 계속될 것이다.

막말과 상식을 넘는 발언들의 배경도 어떻게든 공천을 받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인지도를 높이고, 당 지도부의 마음에 들기 위한 것이다. 공천제도를 바꾸고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세속적인 이익이 생기는 자리가 아님을 보여주면 된다. 공천에서 탈락하더라도 정권이 계속되면 기관장 자리를 차고 나가는 풍토 등도 사라지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국회는 유럽의 일부 국가들처럼 평범한 시민의 대표로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무장한 사람이 일을 하는 대의기구이어야 한다. 일정 기간 국민의 공복으로서 사명을 다하고 다시 일반 시민으로 돌아오는 자리가 국회의원이라는 인식이 팽배한다면 지금처럼 일생을 걸고 사생결단식으로 덤비는 극한의 강경 투쟁은 사라질 것이다. 타협의 정치는 이의 당연한 결과물일 것이며 정치는 시민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가 과다대표와 과소대표의 문제를 다소 완화시킬 수는 있어도 비례대표 후보 공천이 투명하게 전제되지 않는다면 이 역시 진영정치와 극단정치를 완화시킬 수단이 되기에 한계가 뚜렷하다. 선거때마다 등장하는 물갈이 역시 정치를 바꾸는 데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단순한 세대교체로는 정치를 바꿀 수 없다는 게 입증된 지 오래다.

국회의원이 어떤 자리이며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숙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선거경쟁을 핵심으로 하지만 자부심과 자존감을 가지고 국회의원이 시민의 대표라는 인식에 대한 철학적·역사적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대한국정치 70년, 미국처럼 30년이 더 필요하다면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 공직자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제정 과정에서 심화된 적대의 정치가 경자년(庚子年)에 강화될 것인지 여부는 4월 총선의 민의에 달렸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정치학)